항목 ID | GC0840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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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現代 |
영어공식명칭 | Contemporary Time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허종 |
[정의]
1945년 광복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주 지역의 역사.
[개설]
성주군은 경상북도의 서남쪽에 자리하여 북동쪽과 동쪽, 남쪽은 경상북도 칠곡군과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고령군, 서쪽과 북서쪽은 경상남도의 합천군과 거창군, 경상북도 김천시와 접한다. 2021년 1월 기준 성주군의 총 면적은 약 616.10㎢이다. 이 가운데 임야가 410여 ㎢로 67% 정도를 차지하며, 경지 면적은 120여 ㎢로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총 면적 가운데 논이 80여 ㎢로 14%, 밭이 30여 ㎢로 6%이며, 하천과 도로 등이 80여 ㎢로 13%를 차지하고 있다. 성주군의 교육 기관으로는 분교를 포함한 초등학교 14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3개교가 있으며, 성주 도서관이 설립되어 주민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건]
성주군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 1950년 6.25 전쟁까지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광복 직후 치안유지회, 인민위원회, 조선공산당, 농민조합, 부녀동맹 등 좌익 세력의 활동은 활발한 반면 우익 세력은 미약하여 좌우 세력이 날카롭게 대립했던 지역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의 우익 조직이 결성되고,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며 발발한 1946년 ‘10월 사건’으로 좌우 세력 사이에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좌우 세력의 대립이 날카로워졌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국회 의원 선거에서 우익 성향의 인사가 당선되는 등 보수 성향의 정치 지형이 형성되었다. 6.25 전쟁 중 경찰에 의해 국민보도연맹원이 집단 학살되었으며, 북한 인민군이 점령한 후에는 좌익 세력이 우익 성향의 인사를 학살하였다. 특히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어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북한 인민군의 배후지였기 때문에 미군 공습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국군이 수복한 후에는 좌익 세력의 학살에 대한 보복적 성격을 띤 부역자 처벌로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정치 의식]
성주 지역 사람들은 제1 공화국 시기에 일시적으로 반독재 민주 의식을 보여 주었으나, 1960년대 이후부터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보수적인 정치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1961년 박정희 주도의 군부 세력이 집권한 후부터 1979년 무너질 때까지 지속된 제3 공화국, 제4 공화국 시기에 여당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여촌야도(與村野都)’의 정치 성향을 보였다. 이와 같은 정치 의식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맞이한 민주화 이후에도 이어졌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여촌야도의 경향은 사라졌다. 그러나 2017년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2020년 제21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보수 정당 또는 보수 후보에게 높은 지지를 보내는 보수적인 정치 의식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행정 구역 개편]
성주 지역에서는 6.25 전쟁 이후 몇 차례 행정 구역이 개편되었다. 1979년 성주면이 성주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83년 선남면 노석동이 경상북도 칠곡군에 이관되고, 경상북도 고령군 성동이 수륜면에 편입되는 등 인접한 지역의 편입 또는 분리의 방식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었다. 2022년 1월 기준 1읍 9면으로 법정리는 111개, 행정리는 233개이다.
[인구의 변화]
성주군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산업화 과정에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다. 1965년 12만 4000여 명을 정점으로 1970년 10만 7000여 명으로 감소하였다. 특히 1970년대에는 공업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는 이농(離農) 현상으로 1980년 7만 7000여 명으로 대폭 감소하였다.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일시적으로 증가하였다가 1995년 5만 3000여 명, 2000년 5만 1000여 명, 2010년 4만 5000여 명으로 꾸준히 감소하였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인구는 2만 3621가구, 4만 2842명이다. 군청 소재지인 성주읍에 1만 3518명이 거주하여 가장 많으며 선남면, 초전면, 용암면, 월항면 순으로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산업 구조]
성주군에서는 전체 주민 약 42%가 농업을 포함한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가 인구는 6,100여 가구, 1만 3000여 명이다. 성주군의 동남부 지역인 선남면, 용암면, 수륜면 등지는 벼농사가 중심이고, 서북부 지역인 초전면, 벽진면, 금수면 등지는 밭농사 중심으로서 고추, 사과, 상추, 자두, 마늘 등이 주요 작물이다. 특히 선남면을 중심으로 성주읍, 초전면, 월항면, 용암면, 대가면, 벽진면 등지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참외를 많이 재배하며, 벽진면과 초전면, 성주읍, 월항면, 선남면 등지에서는 수박을 많이 생산한다. 참외, 버섯 등은 수출도 많이 한다. 수륜면에서는 고령토와 규석이 생산된다. 성주읍과 선남면, 월항면 등지에 조성된 성주 농공 단지, 선남 농공 단지, 월항 농공 단지에는 섬유 제조 업체가 많이 입주하였으며, 자동차 부품과 건축 자재, 석재 가공 공장도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