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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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澣推戴事件 |
영어공식명칭 | Jeonghan's Attempted Treason Cas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우인수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631년 - 정한 추대 사건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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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631년 - 정한 추대 사건 종결 |
발생|시작 장소 | 옥천 - 충청북도 옥천 |
성격 | 역모 사건 |
관련 인물/단체 | 정한|김안국|문일광|권대진|양시태|조철|양천식|이찬희|정후암|박선검|김자중 |
[정의]
조선 후기 인조 때 권대진 등이 정한을 추대하여 반역을 모의한 역모 사건.
[개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정한(鄭澣), 김안국(金安國), 문일광, 권대진(權大進) 등 정권을 잃은 북인(北人)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역모 사건으로, 성주 사람들도 연루되어 함께 처형되었고 성주는 현(縣)으로 강등되었다.
[경과]
1631년(인조 9) 2월에 옥천(沃川) 사람 조흥빈(趙興賓)과 공주 사람 한설(韓渫)의 고변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옥천에 사는 권대진이 1629년경 요승(妖僧) 2명 및 몇몇 무뢰한들과 내왕하며 민중을 상대로 황당한 말을 유포하여 행적을 의심받고 있었다. 1630년 정월 권대진의 아들 계(繼)·낙(絡) 형제가 조흥빈의 아들 완(浣)에게, “지금 영남과 호남 사이에는 팔대 장수가 있는데, 동시에 군사를 일으켜 장차 큰 일을 도모할 것이다. 이들은 왜적이 침입하였기 때문에 저들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먼저 영남과 호남 사이에서 군사를 일으킨 뒤 곧바로 서울로 진격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에 조정은 모의에 간여한 권대진 부자를 비롯해 정한, 양천식 형제, 이찬희, 정후암, 박선검 형제 등 16명을 붙잡아 국문하였다. 추국 결과 역모 사건의 주모자는 정한이었고, 주축은 정한·김안국·문일광·권대진·양시태·조철 등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참여자 중에는 정인홍(鄭仁弘)의 조카들도 있었다. 대개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잃은 북인들이 세상에 불만을 품고 역모를 꾸민 것이었다.
그중 호서장군(湖西將軍)이라고 하는 김자중은 군사를 모아 장시(場市)에서 난을 일으키며 직산·온양·천안 등의 관장(官長)을 죽이고 무기를 탈취하기로 하였다. 1628년 3월에 병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마침 유효립 모반 사건(柳孝立謀反事件)이 터져 유효립 등이 복주(伏誅)되자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1630년 8월에 다시 일을 도모하려 했으나 한회(韓會)의 옥사로 정한의 당여(黨與)가 많이 죽는 바람에 거병하지 못하였다. 정한은 거사가 성공하면 도읍을 진잠(鎭岑)[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역]으로 옮길 계획이었다고 한다.
[결과]
승복하고 처형된 자는 정한 이하 30여 명이었고, 맞아 죽은 자는 양시태 등 10여 명이었다. 귀양 간 자는 6명이었고, 방면된 자는 50여 명이었다. 성주 사람으로는 박흔 등이 연루되어 처형되었고, 공초(供招) 과정에서 성주 지역 초군의 동원도 등장하였다. 성주는 현으로 강등되었다. 고변자 조흥빈은 당상관(堂上官)에 오르고, 한설은 육품(六品)에 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