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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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曹物城戰鬪 |
영어공식명칭 | Battle of Jomulseong |
이칭/별칭 | 조물군 전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명진 |
발생|시작 시기/일시 | 924년 7월 - 조물성 전투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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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925년 10월 - 조물성 전투 종결 |
전개 시기/일시 | 925년 10월 - 조물성 전투 전개 |
발생|시작 장소 | 조물성 - 경상북도 내륙 지역 |
종결 장소 | 조물성 - 경상북도 내륙 지역 |
성격 | 전투 |
관련 인물/단체 | 왕건|견훤|이능일|궁예|경애왕 |
[정의]
고려 통일 전쟁기에 성주 지역의 호족 세력들이 참전한 고려와 후백제 간의 조물성 쟁탈 전투.
[개설]
조물성(曹物城)[조물군]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과 후백제 견훤(甄萱)이 경상북도 일대에서 주도권 쟁탈전을 벌일 때 주요 군사 거점 중 하나였다. 924년(고려 태조 7) 7월과 925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격돌한 양군 간의 조물성 전투에 성주 지역의 호족 세력들도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물성의 위치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역사적 배경]
진성여왕 때인 889년부터 신라의 분열이 시작되었고, 견훤의 후백제와 궁예(弓裔)의 태봉(泰封)이 신라 영역 안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워 세력을 확대하였다. 이후 918년 6월에는 왕건이 민심을 잃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며 즉위하였다. 왕건과 견훤은 쇠잔한 신라 대신 현 경상북도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격돌했고, 그 대표적 군사 거점 중 하나가 조물성이었다. 조물성은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고, 학자들마다 경상북도 선산 금오산성, 안동 부근, 김천 조마면, 안동과 상주 사이, 의성 금성(金城) 등으로 주장하고 있다. 아무튼 조물성이 경상북도 내륙의 어느 지역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는 조물성 전투 때 성주 지역의 호족 세력들이 참전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내용이 나타나 있다.
[경과]
조물성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가 조물성을 차지하기 위해 벌인 전투로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다. 제1차 조물성 전투는 924년 7월에 있었고, 견훤이 아들 수미강 등을 보내 고려 영역이던 조물성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였다. 제2차 조물성 전투는 다음 해인 925년 10월에 벌어졌고, 왕건과 견훤이 조물성을 놓고 직접 격돌하였다. 두 나라 국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격돌했다면 최정예 부대가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조물성이 그만큼 중요한 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성주 지역 호족 세력들이 조물성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할 만한 내용은 다음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경산부 장군(京山府將軍)인 이능일(李能一), 배신예(裵申乂), 배최언(裴崔彦)은 고려 태조의 통합 삼한할 때인 천수(天授) 을유(乙酉)[925년]에 600인을 거느리고 태조를 도와 백제를 이긴 공로로 후한 상을 받았으며……”[『경상도지리지』「상주도 성주목관」]. 이 기록에서 성주 지역의 호족 세력들이 925년에 왕건을 도와 전투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여기서 전투는 제2차 조물성 전투를 말하는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일리 있는 주장으로 보여진다.
[결과]
고려와 후백제 간의 두 차례에 걸친 조물성 전투는 혈전의 끝을 보지 않고 특이한 화친을 맺으며 종결하였다. 925년 10월의 제2차 조물성 전투에서 고려와 후백제는 질자(質子)[볼모]를 교환하며 전투를 멈추었다. 당시 신라 경애왕은 왕건에게 사신을 통해, “견훤은 변덕스럽고 거짓말이 많아서 그와 화친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말을 전하였다. 경애왕의 이런 친 고려적이고, 반 후백제적인 행위들은 누적이 되면서 큰 비극으로 이어졌다. 927년에 견훤이 신라 도성[현 경상북도 경주]으로 기습 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왕건을 도왔던 이능일을 비롯한 성주 지역의 호족 세력들은 왕건으로부터 후한 대우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통일 전쟁기에 조물성은 경상북도 내륙의 주요 군사 거점 중 하나였고, 정확한 위치가 밝혀진다면 좀 더 풍부한 역사적 사실 및 성주 지역과의 관계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