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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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京山府 |
영어공식명칭 | Gyeongsanbu |
이칭/별칭 | 본피현(本彼縣),벽진군(碧珍郡),광평군(廣平郡),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練使),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성주목(星州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명진 |
[정의]
고려 시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936년(태조 19) 9월에 통일 전쟁을 승리로 장식하고, 940년(태조 23)에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 군현 제도의 정비에 나섰다. 당시 군현 제도 정비의 주요 사례 중 하나가 현 경상북도 성주군 지역의 행정 구역이던 벽진군(碧珍郡)을 경산부(京山府)로 승격한 것이었다. 이후로 성주 지역은 행정 구역의 이름이 변하기도 했지만, 고려 시대 전반에 걸쳐 대체로 경산부라는 이름이 주로 사용되었다. 왕건이 성주 일대를 격이 높은 경산부로 승격해 준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지역의 호족이었던 이총언(李悤言)[858~938]이 통일 전쟁에서 왕건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이었다. 왕건은 성주 일대의 장악과 이총언에 대한 포상 등의 이유로 경산부를 설치한 것이었다.
[관련 기록]
경산부와 관련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이총언의 전기와 「지리지」 경산부조,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주목조에 있다.
[변천]
이총언은 신라 말 고려 초에 성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지역 호족 세력이었고,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여 고려의 통일 완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총언의 공로로 940년에 성주 지역이 경산부로 승격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지역은 신라에서는 원래 본피현(本彼縣)이었고, 경덕왕(景德王) 때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되며 성산군(星山郡)에 속현으로 배속되었다가, 신라 말에 벽진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 들어서 태조 왕건이 940년에 경산부로 승격했으나, 981년(경종 6)에 광평군(廣平郡)으로 강등되었다. 995년(성종 14)에 대주도단련사(岱州都團練使)라 했다가, 1012년(현종 3)에 대주는 유지한 채 도단련사를 폐지하였다. 1018년(현종 9)에 다시 경산부로 환원했다가, 1295년(충렬왕 21)에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성주목(星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다시 경산부로 환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 전쟁 수행 때 적극적으로 협조한 벽진군을 보상 차원에서 경산부로 승격해 주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