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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287
한자 碧珍郡
영어공식명칭 Byeokjin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동주

[정의]

신라 말에서 고려 초까지 성주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개설]

벽진군(碧珍郡)성주군 성주읍 일원의 본피현(本彼縣)이 경덕왕 때 신안현(新安縣)으로 고쳤다가, 신라 말에 개명되어 고려 초까지 사용된 명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경덕왕의 신라 지방 제도 개편 때 본피현신안현으로 개명했고, 나말여초기에는 벽진군으로 개명하였다. 현재의 성주군 성주읍 일원에 해당한다.

[관련 기록]

벽진군과 관련된 자료는 『고려사(高麗史)』에 전한다. 『고려사』에는 나말여초기에 신안현벽진군으로 개명했음을 알 수 있다.

벽진군의 명칭은 나말여초기에 확인된다. 벽진군은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일원에 해당하며, 본래 신라의 본피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신안현으로 고쳤으며, 후에 벽진군으로 개명했다가, 940년(태조 23)에 경산부라 하였다고 한다. 경순왕 2년에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기록이 『고려사』 권1, 928년(태조 11) 6월조에 전한다. 『고려사』의 기록에는 벽진군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여 구체적인 위치가 적기되어 있다.

『고려사』 태조 6년 8월조에는 벽진군 장군 양문(良文)이 생질 규환(圭奐)을 고려에 내항시키자 왕건(王建)이 원윤(元尹)의 관품을 주었다고 한다. 양문을 『고려사』 왕순식(王順式) 열전에 실린 성주 호족 이총언(李悤言)으로 보기도 한다. 이총언은 벽진 지경의 호족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신라와 후백제가 서로 자웅을 겨루는 땅에 끼어 있으면서도 왕건에게 큰 우군이 되었다고 한다.

[변천]

신라와 통일 신라 때의 본피현이 통일 신라의 경덕왕 때 신안현으로 개명되었고, 통일 신라 말에 벽진군으로 개명하여 고려 초까지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지역명의 변경에는 한 국가의 정치 지향이 내재된다. 벽진이라는 명칭은 옛 이름의 음이나 뜻에 관계없이 아름다운 글자로 고친 미개(美改)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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