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277 |
---|---|
한자 | 統一新羅時代 |
영어공식명칭 | Unified Silla Dynast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이동주 |
[정의]
676년 신라 통일부터 935년 멸망 때까지 성주 지역의 역사.
[행정 조직 개편]
신라는 삼국 통일 직후인 685년(신문왕 5) 전국을 구주 오소경(九州五小京)으로 정비하였다. 신라 지역에는 사벌주, 삽량주, 청주를 두고, 옛 백제의 영역에는 웅천주, 완산주, 무진주, 옛 고구려의 영역에는 한산주, 우수주, 하서주를 두었다. 신라는 지방을 아홉 개의 주로 편제하면서 삼국의 옛 영토에 골고루 세 개씩 배치하였다.
낙동강 서쪽에 위치한 성주는 청주(菁州)의 관할이 되었다. 청주에는 남해군[현 경상남도 남해], 하동군[현 경상남도 하동], 고성군[현 경상남도 고성], 함안군[현 경상남도 함안], 거제군[현 경상남도 거제], 궐성군[현 경상남도 산청], 천령군[현 경상남도 함양], 거창군[현 경상남도 거창], 고령군[현 경상북도 고령], 강양군[현 경상남도 합천], 성산군[현 경상북도 성주] 등이 포함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전국에 걸쳐 지명 개정이 단행되었다. 우선 청주는 강주로 변경되었고, 성주는 일리군에서 성산군으로 개명되었다. 그리고 속현인 사동화현은 수동현으로, 대목현은 계자현으로, 본피현은 신안현으로, 적산현은 도산현으로, 도량현은 도안현으로 바꾸었다.
[성산군의 영역]
고대 성산군의 영역은 성주군과 오늘날 경상북도의 구미시, 칠곡군 일대를 망라하였다. 성주군의 군치는 현재의 성주읍 성산동 일대로 비정된다. 그리고 수동현은 현재의 구미시 인의동 일대, 계자현은 현재의 칠곡군 약목면 일대, 신안현은 현재의 성주읍 일대, 도산현은 현재의 성주군 금수면 일대로 비정된다. 경덕왕 대의 지명 개정은 776년(혜공왕 12)에 이전의 고유어식 지명으로 환원되었다.
[관련 기록과 사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8 「열전(列傳)」에는 신라 선덕왕 대의 인물로 추정되는 청주인(菁州人) 성각(聖覺)과 관련한 내용이 보인다. 성각은 거사를 자칭하며 일리현의 법정사(法定寺)에 머물렀는데, 후에 집에 돌아가 늙은 어미가 거친 음식을 먹기 어려워하자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 봉양하였다. 각간 김경신(金敬信)과 이찬 김주원(金周元)이 이러한 이야기를 왕에게 아뢰자 왕이 웅천주 향덕의 고사를 참고하여 이웃 현의 조 300섬을 상으로 내렸다고 한다. 성각이 머물렀다는 일리현은 일리군의 오기였을 것이다.
성주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으로 헌덕왕 14년인 822년에 일어난 김헌창(金憲昌)의 난이 있다. 김헌창은 거듭된 자연재해로 이반한 지역 민심에 편승하여 반역을 일으켰다. 또 935년(태조 18) 고려군은 신검의 후백제군을 일리천에서 대파(大破)한 바 있다. 이처럼 문헌에서 확인되는 성주는 통일 신라 시대 역동적인 공간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