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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67
한자 鳳亭里
영어공식명칭 Bongj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봉정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기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봉정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봉정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봉정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287㎢
가구수 157가구
인구[남/여] 283명[남 138명/여 145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 뒤에 봉황 머리 모양의 산[대광산]이 펼쳐져 있고 마을 안에 냉천(冷泉)과 큰 정자나무가 있어 ‘봉정(鳳亭)’이라 이름하였다. 봉정1리 자연 마을로 무징이[수정(水亭)], 봉산(鳳山), 칠성리(七星里)가 있고, 봉정2리 자연 마을로 조양(朝陽), 학고(鶴皐), 죽내(竹內)[외죽(外竹)·대내], 대안(大安)[내죽(內竹)·죽천(竹川)]이 있다.

무징이는 조선 정조(正祖) 때 노장성(盧長成)이 입향한 후 마을 안에 냉천(冷泉)과 큰 정자나무가 있다고 수정이라고도 하였다. 칠성리는 들 가운데에 7개의 암석이 마치 북두칠성과 같이 놓여 있어 북면칠성리(北面七星里)라 하였는데 언젠가부터 칠성리로 줄여 부른다. 조양은 아침 햇빛이 바로 비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학고는 뒷산에 학이 많이 서식한다는 뜻이다. 죽내는 처음에는 새뜸이라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 자체가 빈곤해지자 방풍을 하면 좋다는 이야기에 마을 앞 솔밭에 대나무를 심고 ‘죽내’라고 개칭하였다. 대안은 고려 후기 왜적의 침입이 잦아 백성의 피해가 극심해지자 이희경(李希慶)이 대광산(大光山) 아래로 피난하여 살면서 편안히 지냈다 하여 ‘대안’이라 부르게 되었다. 죽내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내죽(內竹)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비호석방(非乎石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비호석방을 망성방(望星坊)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냉천동, 봉산동, 수정동, 내죽동, 칠성동, 학고동, 외죽동과 망성면 어은동 일부를 합하여 봉정동으로 하고 유곡면과 초전면, 망성면의 일부를 합한 초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52년 행정동을 봉정1동과 봉정2동으로 나누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초전면 봉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뒤에 대광산이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 낙동강의 지류가 흐른다. 대안 마을 위에서 발원한 봉칠천(鳳七川)이 죽내를 거치고 무징이를 거쳐 초전면 동포1리 갈개 마을 앞에서 홈실천과 합류한다. 봉칠천 변에 무징이들이 있고, 큰갈림들과 조양들이 마을 주변에 있다.

[현황]

봉정리초전면의 중앙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 남부, 서부에 초전면소성리용봉리, 동포리, 월곡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287㎢이며, 봉정1리와 봉정2리 2개 행정리에 157가구, 283명[남 138명, 여 14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 마을 칠성리 남쪽으로 지방도 제905호선이 지나간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문화 유적으로 칠성리 안에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다고 하는데,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있는 성주 세종 대왕 자 태실(星州世宗大王子胎室)을 조성하고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무징이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는 높이 18m, 둘레 8.3m, 뻗은 가지는 동서로 14m, 남북으로 10m이다. 수령은 700년 이상으로 추측되는 보호수이다. 해마다 은행 열매를 20가마 이상 수확하여 마을 기금으로 사용하며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잠시 쉬는 휴식처인데,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전한다. 봉정2리 냉천(冷泉)[찬물내기]과 관련한 기록이 『경산지(京山志)』『성산지(星山誌)』의 ‘산천’ 조에 보인다. “고을 북쪽 22리의 천수(泉藪)[샘과 늪, 습지] 안에 있으며, 병자들이 목욕하여 효험을 많이 보았으며, 샘물이 퍼져 관개로 혜택을 많이 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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