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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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鳳里 |
영어공식명칭 | Yongb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용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기옥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자연 마을인 용두(龍頭)와 봉무(鳳舞)에서 각각 한 자씩을 따와 ‘용봉(龍鳳)’이라 이름하였다.
용봉1리의 자연 마을로 용두, 너리[원터[院址, 院基]], 오봉(五峯), 신흥(新興)이 있고, 용봉2리의 자연 마을로 봉무, 새마[신기(新基)], 높은들[고평(高坪)], 광산(鑛山)이 있으며, 용봉3리의 자연 마을로 성신원(聖信院)이 있다. 오봉은 너리 남쪽 산기슭에 자리한 높이 100m의 마을로, 마을 뒤 다섯 개의 산봉우리로 인하여 ‘오봉’이라 불린다. 신흥은 6.25 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이룩한 마을로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정착하여 새로 일으킨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무는 용봉교를 지나 오른쪽 높이 110m의 완만한 산기슭 서남향에 자리하였다. 뒷산의 형세가 마치 새가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마는 봉무서 위로 500m 정도 떨어진 마을로 농사를 짓기 위하여 봉무, 용두에서 사람들이 이주하여 새로 마을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광산은 경상북도 김천시와의 경계인 신거리 고개 아래 도로변 마을이다. 1920년께 발견된 광맥으로 인하여 유래한 지명이다. 현재 광산은 폐광되었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비호석방(非乎石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비호석방을 망성방(望星坊)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용봉동으로 하고 초전면과 유곡면, 망성면의 일부를 합한 초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71년 행정동인 용봉1동을 용봉1동과 용봉3동으로 나누었다. 1988년 5월 조례 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초전면 용봉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경상북도 김천시 방향 오른쪽으로 영암산(鈴岩山)[현령산(懸鈴山)]이 동남쪽으로 길게 뻗어 선석산(禪石山)과 연결되어 있고, 산 아래로는 백천(白川)이 높은들[고평]에서 발원하여 봉무, 성신원 아래를 거쳐 초전면 소재지로 흐른다. 영암산은 용봉리와 경상북도의 김천시 남면 부상리와 칠곡군 북삼면 보손리로 둘러쳐진 3개 군계의 산이다. 또한 광산 마을과 김천시 남면 월명리를 오가는 지방도 제905호선 군계에 신거리 고개[구괘현(屨掛峴)]가 있다. 용봉리에는 고평천(高坪川), 신기천(新基川)이 흐르고, 간지바위골, 갓골, 너리골, 도정골, 저승골, 큰너리골, 큰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있다. 이 외에도 새골지, 봉무지, 용봉지(龍鳳池)라는 못이 있고, 마을 주변에는 너리들, 큰평들, 앞들, 높은들이 마을 주변에 있다.
[현황]
용봉리는 초전면의 동북단에 자리하여 동부는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보손리와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남부와 서부는 초전면의 어산리와 봉정리, 소성리, 북부는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의 월명리, 부상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552㎢이며, 용봉1리와 용봉2리, 용봉3리 3개 행정리에 263가구, 466명[남 246명, 여 2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초전-김천 간 지방도 제905호선이 용봉리를 관통한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교육 기관으로 초전초등학교 봉소분교장이 있다
용두는 성주-김천 간 도로 서편 1㎞ 거리에 자리하고 너리는 초전면 소재지에서 김천 방향 도로를 따라 5㎞ 지점 용봉교 이남의 도로 좌우에 있는 마을이다. 김천시와의 경계 조금 못 미쳐 도로 서편 언덕에 높은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대순진리교에서 주변 토지를 매입한 이후 현재는 주민 대부분이 타지로 이주한 실정이다. 성신원은 신흥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들어가 산 밑에 있는 한센병 환자들의 정착촌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성주분원이 있었으나 1995년 4월 30일 폐쇄되었다.
문화 유적으로 대야원(大也院)이 있는데 원(院)은 오늘날 여관과 동일한 곳으로 국빈(國賓)이나 일반 관리들이 고을을 왕래하다가 숙박을 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소성리로 들어가는 용봉리 끝지점 도로변 근처 논두렁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지상 높이가 360㎝ 정도인 선돌[立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