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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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紫山里 |
영어공식명칭 | Ja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자양동의 ‘자’ 자와 산지동의 ‘산’ 자를 따와 ‘자산(紫山)’이라 이름하였다. 본디 명칭인 성산(城山)의 우리말 ‘잣뫼’를 차용하여 자산으로 하였다는 설도 있다.자산1리의 자연 마을로 점복(占福)[전북·자산(紫山)·자양]과 율리(栗里)가 있고, 자산2리의 자연 마을로 영동(靈洞)[귀령골·귀령곡(貴靈谷)]과 사르말[산느말·산전(山田)], 중리(中里) 등이 있다.
점복은 동래 정씨(東萊鄭氏) 집성촌으로, 자산[자양산, 359.9m] 서쪽 아래에 있으며, 자산(紫山) 또는 자양(紫陽)이라고도 불렀다. 임진왜란 때 전라북도 정읍에서 정세로(鄭世老)가 피난를 와서 살았기에 전북(全北)이라 부르다가 후손들이 점복(占福)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이장경(李長庚)이 이곳에 살았는데, 그 아들 다섯이 모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으므로 ‘복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점복이라 불리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율리는 점복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점복(下占福)이라고도 불렀다. 1911년 발행된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밤나무가 많은 곳이라서 율리(栗里)로 부른다고 표기되어 있다.
영동은 귀령골이라고도 불렀으며, 자산 저수지에서 북쪽으로 1㎞쯤 떨어진 거리에 자리한 산촌이다. 북서쪽 산봉우리에 점복 동편 자산과의 보조적 전초(前哨)로서 교통하는 북[鼓]을 달아 놓은 ‘복다락[고루(鼓樓)]’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고루의 형태가 고어의 ‘ㅣ’ 변칙에 의해 ‘괴뤼’로 변한 ‘괴륑골’이 귀령골이 된 것이다. 『경산지(京山志)』 각 방조에는 영동을 영인평(永仁坪)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부에선 1500년(연산군 6)경 이순(李舜)이 마을을 일구었으며, 임진왜란 때 고령목사(古靈牧使) 이수일(李守一)이 귀령곡이라 부르다가 그 후 다시 영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성주 이씨(星州李氏) 집성촌이다. 사르말은 자산 저수지 북쪽 약 400m 지점에 자리하며, 1600년(선조 33)쯤 이순의 후손이 산 아래 밭에 이주하여 살았다고 산느말, 또는 산전이라 불렀다. 중리는 자산리 중앙 산간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죽곡방(粥谷坊)[풀곡]에 속하였다. 1546년(명종 1) 목사 이윤경(李潤慶)이 죽곡방을 운곡방(雲谷坊)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자양동, 산지동, 중리동, 율리동, 나복동, 산전동 등을 합하여 자산동으로 하고 운곡면과 명암면을 합한 벽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벽진면 자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자산리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용봉산(龍鳳山)[463.6m], 동쪽 자산, 남서쪽 연봉산[229.1m]과 함께 전체적으로 200~450m 높이의 산지가 분포하고 있는 산악지이다. 산악지는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경상계 불국사층군 화강 섬록암이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합쳐지면서 서편에는 중리지에 모였다가 남동류하는 운곡천과 동편에는 상점복 저수지에 모였다가 남서류하는 점복천이 벽진 저수지로 유입된다. 하천을 따라 곡저 평야가 발달하였다.
[현황]
자산리는 벽진면의 중앙 동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초전면의 고산리와 자양리, 남부와 서부, 북부는 벽진면의 운정리와 수촌리, 외기리, 수촌리, 봉학리, 용암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67㎢이며, 자산1리와 자산2리 2개 행정리에 128가구, 229명[남 121명, 여 10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벽진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 수촌리에서 북동 방향으로 지방도 제913호선이 개설되어 자산1리 점복을 지나 초전면 고산리로 이어지고, 북서 방향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자산2리의 산전, 영동, 중리까지 이어져 있다. 아랫점복과 산전 아래에 있는 자산 저수지는 1944년 조성되었으며, 길이 190m, 높이 10m, 총저수량 57만 2000㎥, 만수 면적 1.62㎢, 수혜 면적 1.15㎢이다. 참외가 성주군을 대표하는 특산물로 떠오르기 전에는 자산리를 중심으로 생산된 수박이 성주를 대표하는 농산물이었는데, 우수한 기술력으로 촉성 재배하여 전국에서 명성을 얻었다.
문화 유적으로 성주 이씨 중시조인 농서군공(隴西郡公) 이장경을 위시한 현조(顯祖) 22인을 제향하는 안산영당(安山影堂)[경상북도 문화재 자료]을 비롯하여 주자(朱子)를 제향하기 위하여 향내 유림이 1890년(고종 27)에 세운 자산서당(紫山書堂)이 있고, 조선 선조(宣祖) 때 사람인 정세로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귀후당(歸厚堂), 이병직(李秉直)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영원재(靈源齋), 군자감 참정(軍資監參正)을 지낸 진응문(陳應文)을 추모하기 위한 경복재(景福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