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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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巖里 |
영어공식명칭 | Yongam-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용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기우제와 동제를 지내던 민간 신앙의 대상으로 용의 형상을 한 용바위가 있어 ‘용암(龍巖)’이라 이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용바위는 달창 마을과 벽진면 봉학리 새내미 마을 경계에 있었으나 봉학 저수지가 생기면서 수몰되었다. 용암1리의 자연 마을로 달창(達倉)과 달밭[월전(月田)]이 있고, 용암2리의 자연 마을로 수근(水根)이 있다.
달창은 봉학 저수지 북쪽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 시대에 김천 지역에서 국세로 걷히는 현물과 곡물 일부를 보관한 창고가 있어 달창(達倉), 또는 창리(倉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한편 1756년(영조 32) 목사 김치온(金致溫)이 양곡을 보관하고자 이곳에 창고를 지었기 때문에 달창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다. 달밭은 달창 북쪽에 있는 마을로, 달밭의 바깥쪽에 자리하여 바깥달밭이라고도 하였는데, 달밭의 뜻을 가진 월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수근은 달창 북서쪽 성주군과 김천시의 경계인 백마산[716.2m]과 고당산[60.3.5m] 등의 산지 남쪽 협곡에 있는 이천(伊川)의 상류 지역으로, 유수(流水)의 근원이 이곳에 있다 하여 수근이라 불리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죽곡방(粥谷坊)[풀곡]에 속하였다. 1546년(명종 1) 목사 이윤경(李潤慶)이 죽곡방을 운곡방(雲谷坊)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수근동과 봉양동 일부, 운곡면 달전동, 창리동을 통합하여 용암동이라 하고 운곡면과 명암면(明岩面)을 합한 벽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벽진면 용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용암리는 북동쪽 백마산, 북서쪽 고당산, 남서쪽 빌무산[783.6m]에서 뻗어 나온 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악지이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크고 작은 골짜기를 만들면서 합쳐져 용암리의 중앙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이천이 되어 남동류하고, 동쪽에는 이천의 지류 하천인 용암천이 남서류하여 이천과 합쳐져 봉학 저수지로 흘러간다. 이들 하천을 따라 곡저 평야가 나타나고, 차별 침식으로 형성된 침식 분지에 자연 마을이 자리한다.
[현황]
용암리는 벽진면의 북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초전면, 남부는 벽진면의 자산리와 외기리, 봉학리, 서부와 북부는 경상북도 김천시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56㎢이며, 용암1리와 용암2리 2개 행정리에 127가구, 207명[남 101명, 여 10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벽진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한 수촌리에서 북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있는 산지 마을이다. 용암리 북쪽 경계지에서 도로를 따라 남쪽에 자리한 수근과 봉학 저수지에 인접한 달창, 그리고 초전면의 안달밭으로 향하는 산곡의 달밭으로 구분된다. 봉학 저수지에서 수근 마을을 지나 김천시로 이어지는 도로가 이천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문화 유적으로 김연(金演)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930년쯤 세워진 재사(齋舍) 경돈재(景遯齋)가 달창 마을 중간 지점에서 북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뒤편 산기슭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