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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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鶴里 |
영어공식명칭 | Bongha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봉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봉양동(鳳陽洞)의 ‘봉’ 자와 선학동(仙鶴洞)의 ‘학’ 자를 따서 ‘봉학(鳳鶴)’이라 이름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학1리의 자연 마을로 선학동(仙鶴洞)과 서당골[서당곡(書堂谷)]이 있고, 봉학2리의 자연 마을로 명암중리(明岩中里), 봉학3리의 자연 마을로 한밤[대야(大夜)], 봉학4리의 자연 마을로 새내미[조여촌(鳥餘村)·봉알·봉양(鳳陽)] 등이 있다.
선학동은 봉학 저수지 남쪽 이천과 지류 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마을이다. 1594년(선조 27)쯤 상주(尙州)에서 홍여도(洪汝道)와 배문강(裵文剛)이란 두 선비가 입향하였다. 마을의 지형이 학이 외발로 몸을 지탱하는 형상과 같고, 또한 마을 앞 성제봉(聖帝峰)의 지맥인 학산(鶴山)의 모양이 학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라 선조(宣祖) 때 강도창(姜道昌)이 입향 후 선학동이라 이름하였다. 서당골은 선학동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1800년경 이양문이 서당을 세워 수학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암중리는 선학동에서 서쪽으로 약 800m 떨어진 곳에 있는 구릉지성 산간 마을로 벽진면의 가운데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600년(선조 33)쯤 도석령(都錫令)이 입향하였는데, 선학동과 한밤의 중간에 있다 하여 중리(中里)라고 하였으나 1897년(고종 34) 벽진면 지역이 명암방과 운곡방으로 나누어졌을 때 운곡방의 중리와 구별하기 위하여 명암중리라고 불렀다. 이후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명리(明里)로 개칭하였다.
한밤은 선학동에서 서쪽 계곡 상류를 따라 약 3.5㎞ 지점에 있는 산간 마을로, 넓은 밭이 분포하는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한배미라고도 했는데, 한배미는 ‘규모가 큰 뱅이’라는 의미로 ‘한’은 크다[大]이고 ‘뱅이’는 물건의 생산 업소를 뜻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한뱅이는 산간에서 생산하는 함박일 것이며, 이 함박이 함뱅이, 한밤 등으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1600년경 이광목이 이 마을에 입향하였는데 마을 뒤에 수등산(樹燈山)이 있어 등(燈)은 어두운 밤에 사용한다는 뜻에서 한밤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새내미는 봉학 저수지 북서쪽에 있으며, 약 400년 전 배수광(裵繡光)이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양지와 음지에 대나무가 숲을 이루었는데 이곳에 새가 많이 모여들여 새남이라 불렀다고 한다. 몇 년 후 뒷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새보다 큰 봉의 알과 같이 생겼다 하여 ‘봉(鳳)’ 자를 따서 봉알이라 개칭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양지바른 남향이라는 뜻의 봉양으로 바꾸었다. 1980년대 봉학지(鳳鶴池)가 착공되면서 앞쪽에 있던 동네와 길은 수몰되었다.
[형성 및 변천]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3월 암회방(岩回坊)에 속하였다. 1555년(명종 10) 목사 노경린(盧慶麟)이 암회방과 명간방(明澗坊)[밝간이방]을 합하여 명암방(明岩坊)으로 하였다. 1895년(고종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선학동, 중리동, 대야동, 봉양동, 사당동(祠堂洞)[일명 서당동(書堂洞)] 각 일부를 통합하여 봉학동으로 하고 명암면과 운곡면을 합한 벽진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벽진면 봉학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봉학리에는 북쪽 빌무산[783.6m]을 비롯한 750m 이상의 산지들과 서쪽 연봉산[704.9m]과 염속봉산[679.3m] 등의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명리천과 오증골천 등 많은 소하천이 합쳐져 봉학리 남쪽 지역인 명암중리와 선학동 앞을 남서-북동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흘러, 봉학리의 동쪽 지역에 조성된 봉학 저수지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이천에 유입된다. 산지 소하천은 곡저 평야를 만들고, 이천은 범람원을 형성하였다.
[현황]
봉학리는 벽진면의 서쪽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는 벽진면의 자산리와 외기리, 후평리, 서부와 북부는 금수면 후평리와 벽진면 용암리,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이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4.02㎢이며, 봉학1리와 봉학2리, 봉학3리, 봉학4리 4개 행정리에 138가구, 219명[남 119명, 여 1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금수면 후평리를 지나 북쪽 방향으로 나 있는 국도 제59호선의 오른쪽으로 약 3.2㎞ 떨어진 곳에 있다. 문화 유적으로 문창후(文昌候)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향사하는 숙경사[고운사당(孤雲祠堂)]와 국은(菊隱) 도상범(都相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한 국은정(菊隱亭)이 있고, 봉학지에서 새내미 마을 가기 전 왼쪽에 『용사일기(龍蛇日記)』를 쓴 암곡(巖谷) 도세순(都世純)의 묘와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