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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128
한자 中山里
영어공식명칭 Jungsa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중산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재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중산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73년 7월 1일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중산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중산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중산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중산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4.26㎢
가구수 93가구
인구[남/여] 155명[남 76명/여 79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중산(中山)’ 지명은 옛날 중국의 하북성 지역에 있었던 중산이라는 나라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중산에 살았던 적(狄)이라는 부족이 천일주(千日酒)를 잘 빚었는데, 이 술을 마시면 1,000일 동안 취한다고 한다. 그래서 중산의 술맛과 중산동의 물맛을 비유하다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연 마을로 강정, 머지뫼, 안뜸, 중산동이 있다. 강정은 성주호 바로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조선 선조(宣祖) 때 우승지를 지낸 괴재(愧齋) 배상호(裵尙虎)가 강변에 큰 정자를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머지뫼는 가야산의 정기가 형제봉독용산성(禿用山城)을 거쳐 고루산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도산이 받아먹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뜸은 머지뫼 안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산동 뒤 도산은 도장골이라고 불렀다. 옛날에 마을의 농가들이 다 부유하여 집마다 벼를 1,000석이나 거두어 천석골로 불렀는데, 후에 산적의 침탈을 받아 동리를 현재의 마을 자리로 옮기고 도장골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강정과 중산을 합하여 중산동으로 하고 성주군 대가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73년 7월 1일 가천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가천면 중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신흥뒷산, 도장골산 등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성주 저수지[성주호] 아래에 자리해 마을 옆으로 대가천이 흐르며 경지가 소규모로 분포하고 있다.

[현황]

중산리가천면의 동북쪽에 자리하여 북부와 동부는 성주군 금수면봉두리광산리,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남부와 서부는 가천면창천리, 금봉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26㎢이며, 중산리 1개 행정리에 93가구, 155명[남 76명, 여 7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국도 제59호선이 마을을 통과하며 강정은 리도 제5-205호선, 머지미는 농도 제5-303호선으로 국도 제59호선과 연결되어 있다. 자연 마을 안에 농로와 좁고 구불구불한 소로가 있다. 누정으로 배상보(裵尙黼)의 학덕을 추모하는 도산재(道山齋)와 한두영(韓斗英)과 그 부인 의인(宜人) 목천 우씨(木川于氏)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영경재(永敬齋)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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