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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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亭里 |
영어공식명칭 | Shinj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신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신정리의 자연 마을로 양정(陽亭)[양양촌·양장(羊場)], 임천(林泉)[이성터], 새터, 새별이 있다. 양정은 고려 때부터 있었던 마을인데 당시는 창평(倉坪)이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 주민들이 염소를 길러 양장(羊場)이라고 부르다가 조선 후기 마을에 정자가 있다고 하여 양정(陽亭)이라 하였다. 임천은 조선 선조(宣祖) 때까지 이성터로 불리다가 1729년(영조 5) 배진홍이라는 사람이 마을 앞의 숲과 샘이 좋다며 임천이라 바꿔 불렀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신라 경덕왕 16년인 757년 일리군(一利郡)이 성산군(星山郡)으로 바뀌었을 때 대리방의 본거지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신정동으로 하고 대리면과 청파면을 합면한 청파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청파면과 지사면을 수륜면으로 합면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수륜면 신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쪽과 서쪽은 200~3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사이로 대가천(大伽川)이 흐른다. 대가천과 지류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동쪽과 서쪽에 평탄한 지형을 만들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농토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정리 회연서원 뒤편 낮은 산봉우리를 봉비암(鳳飛巖)이라고 부르는데, 봉황이 나는 듯한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 봉비암의 풍경이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무흘구곡(武屹九曲)」 중 제1곡에 나온다. 신정리 양정 마을과 수륜면 적송리 분통골 마을을 거쳐 신파리로 나드는 국도 제33호선 고갯길을 마을 주민들은 느릅재와 늘붓 고개로 부른다. 거산(巨山)에서 발원하여 임천 마을 아래에서 대가천으로 들어가는 소하천을 임천천(林泉川)이라고 한다. 양정 마을과 새뜸 마을의 앞 동쪽들로 대가천 변에 있는 들은 양정들이고, 임천 마을의 앞 서쪽들로 대가천과 갓말천의 삼각주 지점에 있는 들은 임천들이다.
[현황]
신정리는 수륜면의 중앙에 자리하여 북부는 수륜면의 수성리와 송계리가 대가천을 따라 연결되어 있고, 동부와 남부, 서부는 수륜면의 작은리와 수륜리, 적송리, 봉양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80㎢이며, 신정리 1개 행정리에 108가구, 179명[남 85명, 여 9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신정리의 인구는 1974년 682명에서 1994년 301명, 2001년 261명, 2018년 173명, 2021년 179명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다. 가구 수는 1974년 125가구에서 1994년 98가구, 2001년 91가구, 2018년 93가구로 감소하다 2021년 108가구로 소폭 증가하였다.
서북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대가천의 양안을 따라 임천, 양정, 새터, 새별이 자리한다. 문화 유적으로 한강 정구의 후손들이 건립한 회연서원(檜淵書院)[경상북도 유형 문화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