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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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坪里 |
영어공식명칭 | Deokpy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덕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덕평(德坪)’이란 이름은 지역 내 네 개 자연 마을 중 큰 마을인 원덕평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평야 가운데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덕평이라 불렀다고 한다. 덕평리의 자연 마을로 원덕평(元德坪), 사부골[사부곡(沙阜谷)], 오백리[오봉리(五峯里)], 윗골[위동(渭洞)]이 있다.
원덕평은 덕평리가 시작된 마을로, 마월리와 상신리 방향에서 뻗어 나오는 두 갈래의 신천이 합류하는 지점 남동쪽에 있는 평야 마을이다. 사부골은 임진왜란 당시 현풍 곽씨(玄風郭氏)가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하며, 이곳에서 사금(砂金)이 생산될 때 사금 채취를 위해 건져 올린 모래가 쌓인 흔적이 있어 ‘사부(沙阜·沙夫·沙鳧)’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봉리는 마을 뒷산 봉우리가 다섯 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다른 이름인 오백리에 대한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윗골은 두릉방(杜陵坊)에 속해 있을 때 바깥 동네, 즉 외동(外洞) 혹은 위동(渭洞)으로 불렀다가 마을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윗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두의곡방(豆衣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두의곡방을 두릉방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두릉면의 외동과 사부동, 우항동(牛項洞), 원덕평을 합하여 덕평동으로 하고 두릉면과 대동면(大同面)을 합한 용두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2월 1일 용두면과 성암면을 합쳐서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덕평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덕평리 남쪽에는 고령(高靈), 성주 서남부, 합천(陜川), 거창(居昌) 등지에서 대구 방면으로 나들던 주요 통로였던 칠령재 주봉(主峰)인 매봉산에서 흩어져 내리는 산줄기가 분포하고,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산지 소하천이 북쪽으로 흐르면서 곡저 평야를 형성하였다. 마을의 북쪽에는 동쪽으로 흐르는 신천의 범람으로 형성된 충적 평야가 하천을 연하여 펼쳐져 있다.
[현황]
덕평리는 용암면의 남서쪽에 자리하여 동쪽은 용암면의 본리리와 용정리, 남부와 서남부는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서북부와 북부는 용암면 대봉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7.03㎢이며, 덕평리 1개 행정리에 129가구, 203명[남 116명, 여 8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용암면 소재지에서 상성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약 2.9㎞ 떨어져 있다. 덕평리 북쪽으로 지방도 제905호선이 걸쳐 있고 동쪽으로 중부 내륙 고속 도로와 지방도 제67호선이 지나간다. 평야 지대에는 논농사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참외를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 토기 산포지, 도요지와 함께 청은재(淸隱齋), 경덕재(景德齋) 등의 재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