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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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洛里 |
영어공식명칭 | Dongna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동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동락(東洛)’은 자연 마을인 동락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정된다. 동락1리의 자연 마을로 동락골[동락·원동락(元東洛)], 개정리[가정동(柯亭里)]가 있고, 동락2리의 자연 마을로 패약골[두만동(豆滿洞)]과 가죽정(柯竹亭)[가정]이 있다.
동락골은 동락리에서 가장 동쪽, 물길이 흐르는 곳에 있다 하여 동락골 또는 동락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개정리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250여 년 전에 큰 정자가 있었는데 그 주변에 가죽나무가 무성하여 가죽나무와 정자에서 한 자씩을 따와 가정이라고 불렀다.
두만동은 동락 북쪽 낮은 산등 너머 후포 평야(後浦平野)를 건너 용암면 기산리와 멀리 마주 보는 마을이다. 1750년(영조 26)쯤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콩을 비롯한 여러 밭작물이 잘되어서 그 수확물로 마을이 가득 찬다 하여 두만동(豆滿洞)으로 불렀다. 가죽정은 1800년경 이곳에 있었던 가죽사(柯竹寺)라는 절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이후 조선 시대까지 대동방(大同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동면의 조암(釣巖), 두만(斗滿), 동락, 후포(後浦) 일부와 관산(官山) 일부, 가정 일부와 화곡면(和谷面)의 무릉(武陵) 일부를 합하여 동락동으로 하고 대동면과 두릉면을 병합한 용두면(龍頭面)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2월 1일 용두면과 성암면을 합쳐서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동락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동락리는 낙동강이 성주군과 경상북도 고령 군계에서 동쪽으로 물길이 돌아가는 곡강부(曲江部)에 있는 강촌(江村)이다. 남쪽은 약 200m 내외의 산지이고, 북쪽은 동류하는 신천이 남류하는 낙동강에 합류하면서 발달한 충적 평야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현황]
동락리는 용암면의 가장 동쪽 끝에 자리하여 동부는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 남부와 서부는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 성주군 용암면사곡리와 기산리, 북부는 성주군 용암면 문명리,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81㎢이며, 동락1리와 동락2리 2개 행정리에 142가구, 236명[남 134명, 여 1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평야 지대에서는 대부분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여 참외를 재배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 삼국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락리 토기 산포지가 있으며, 조선 후기 유학자인 낙애(洛涯) 이진방(李震芳)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920년 건립한 낙애서당(洛涯書堂), 조선 전기 직장을 지낸 신영정(申永貞)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943년경 지은 재사인 원후재(遠厚齋), 홍문관 정자 이정현(李廷賢)과 한포(寒浦) 이수성(李壽星) 부자 내외의 묘소 수호와 묘제를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조한재(照寒齋)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