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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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亭里 |
영어공식명칭 | Yongj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용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용전(龍田)과 송정(松亭)에서 각각 한 자씩 따와 ‘용정(龍亭)’이라고 이름하였다. 용정1리의 자연 마을로 송정[용정]이 있고, 용정2리의 자연 마을로 회봉(回峯)[신안동(新安洞)]이 있다. 송정은 용정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산세가 용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정자 근처에 나무가 많아서 용정이라 불렀고, 또 소나무 정자가 있어 송정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회봉은 마을 앞에 위봉이란 산이 있고 그 주위를 높은 산봉우리가 둘러싸기 때문에 회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 성주목(星州牧)에서 주관한 봉수대(烽燧臺)가 있는 횃불봉으로 가는 마지막 안골이었으므로 ‘홰봉’ 또는 ‘새안골[연봉(烟峯)·내동(內洞)]’이라 부른 것이 변하여 회봉이 되었다는 설과 1894년(고종 31) 발생한 동학 농민 운동 때 침해(侵害)를 받지 않았다 하여 ‘신안(新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통일 신라 시대 이후 두의곡방(豆衣谷坊)에 속하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두의곡방을 두릉방(杜陵坊)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용전동과 신안동(新安洞), 송정동 일부를 통합하여 용정동으로 하고 두릉면과 대동면(大同面)을 합한 용두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2월 1일 용두면과 성암면을 합면하고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용정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용정리의 동쪽에 솟아 있는 용두봉(龍頭峰)[124m]은 창벽 단애(蒼壁斷崖)와 청정수(淸淨水)가 수려한 운치를 이루어 이 지방의 명승지로 여겨진다. 용두봉에 이어 약 100m 높이의 암봉(岩峯) 네 개가 남동쪽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를 용두산릉(龍頭山陵)이라고 한다. 용두봉 단애(斷崖) 아래에는 맑고 깨끗한 용계천(龍溪川)이 굽이 돌아 신천(新川)[두의곡천]으로 유입된다.
[현황]
용정리는 용암면 남쪽에 자리하여 동부는 용암면의 사곡리와 선송리, 남부와 서부는 고령군 운수면과 성주군 용암면 덕평리, 북부는 용암면의 본리리, 상언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4.92㎢이고, 용정1리와 용정2리 2개 행정리에 197가구, 306명[남 174명, 여 13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상언리와 함께 용암면 소재지를 형성하는 마을로 용암파출소와 용암우체국 등 공공 기관이 있다.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쭉한 형태로 발달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문화 유적으로 용정리 고분군과 토기 산포지, 첨모재(瞻慕齋) 등이 있다. 또 용암파출소 옆에 1918년 8월 홍수로 떠내려간 용암 방천[속칭 두리 방천]을 다시 쌓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 준 염농산(廉隴山)의 공덕을 기리어 마을 사람들이 세운 ‘염농산 제언 공덕비(廉隴山堤堰功德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