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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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本里里 |
영어공식명칭 | Bolli-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본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두리실 마을이 옛 두릉방의 중심 지역이어서 ‘본리(本里)’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리1리의 자연 마을로 괴평리(槐坪里)[귀평리]가 있고, 본리2리의 자연 마을로 두리실[두리곡(杜里谷)·본리·두릉(杜陵)·두의곡(豆衣谷)]과 갓골[관동리(冠東里)]이 있으며, 본리3리의 자연 마을로 보뜸[원리(院里)]과 회목[괴항(槐項)]이 있다.
괴평리는 두릉 남동쪽에 있는데, 경신년(庚申年) 대홍수로 마을이 매몰되자 괴목(槐木)[회화나무]이 많은 산기슭 평평한 곳으로 이주하여 괴평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괴평리를 경상도 말로 ‘귀평리’라고 한다.
두리실은 두릉방의 중심 마을이라는 의미로 본리라고 하였는데, 두의곡과 두릉의 방명(坊名)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은 것 같다. 일설에는 조선 전기 세조(世祖) 때 영야헌(詠野軒) 권유검(權有儉)[1421~1463]이 이곳에 은거한 후 언덕에서 침입자를 막는다는 뜻에서 두릉(杜陵)이라 부른 것이 변하여 두리곡·두리실이 되었다고 전하며, 또 마을 안산(案山)이 명기(明氣)를 가득 담은 뒤웅박[두리박의 방언]의 형국이라 ‘뚜리실’이라 한 것이 변하여 ‘두의곡[실]’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갓골[관동리]은 두리실 동북쪽 골짜기 초입에 형성된 마을로, 넓게는 두리실에 포함된다. 옛날부터 이 마을에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 하여 ‘벼슬 관(冠)’ 자를 써서 관동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보뜸은 조선 시대 용암면 상언리 안언(安偃) 마을에 설치하였던 안언역(安偃驛)과 연계하여 원(院)이 있었던 곳이자 ‘원장(院場)’이라 부르는 시장이 섰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이후 시장이 안언장(安偃場)[현 용암 장터]으로 점차 옮겨 가고 이곳 장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원과 시장이 있던 곳이라 ‘원리(院里)’ 또는 ‘원동(院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뜸은 마을 주변 농지에 관개(灌漑)를 하기 위해 신천(新川)에 보(洑)를 설치한 후 보 옆에 있는 마을이라 ‘보뜸’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회목은 마을 앞에 회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고 용골[삼밭골]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삼한 시대 때는 고령가야(古寧伽倻)의 영지(領地)로 추측된다. 통일 신라 시대인 685년(신문왕 5)부터 일리군(一利郡)에 속한 두의곡방(豆衣谷坊)의 본거지였다. 1845년(헌종 11) 성주목사 김횡(金鑅)[1784~1847]이 두의곡방을 두릉방(杜陵坊)으로 고쳤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본리동으로 하고 대동면과 두릉면을 병합한 용두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2월 1일 용두면과 성암면을 합면하고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본리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용암면 소재지 서편의 평야지와 고대 두의곡방의 중심부를 차지하여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취락 환경을 갖춘 지역이다. 이곳에서 신천을 건너 바라보이는 산맥이 명지(名地)라 안산(案山)이 된다. 대부분 산악지이며, 남쪽에 신천에 의한 충적 평야가 발달하여 있다.
[현황]
본리리는 용암면 소재지에서 본성로를 따라 북서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 서부는 용암면의 운산리와 상언리, 덕평리, 마월리, 북부는 선남면 명포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5.71㎢이며, 본리1리와 본리2리, 본리3리 3개 행정리에 171가구, 291명[남 158명, 여 13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2007년 중부 내륙 고속 도로 남성주 IC가 개설되어 성주군의 교통 요충지가 되었다. 교육 기관으로 용암중학교가 있다. 본리리는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명주 짜기와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무명 짜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