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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0083
한자 明浦里
영어공식명칭 Myeongpo-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명포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성암면 명포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성암면 명포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명포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명포동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명포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연표보기 -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명포리에서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명포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6.630㎢
가구수 200가구
인구[남/여] 377명[남 188명/여 189명]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문명동(文明洞)과 송포동(松浦洞)에서 한 자씩을 따와 ‘명포(明浦)’라고 이름한 것으로 추정된다. 명포1리의 자연 마을로는 금은계 마을, 선무 마을, 새실 마을이 있고, 명포2리의 자연 마을로는 솔개 마을, 걸바대 마을이 있다.

금은계 마을은 금계(金溪)라고도 불린다. 문헌마다 시기는 다른데 1670년(현종 11)께 박명호라는 선비가 입항하던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자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신풍’이라 하였고, 그 후 1690년(숙종 16)쯤 배춘길이라는 선비가 마을 앞 계곡에서 금이 많이 난다고 하여 금계(金溪) 또는 금은기(金銀基)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 이 마을에 거문고를 잘 켜는 악성(樂聖)이 있어서 ‘금계(琴溪)’라고 불렀는데 후대에 잘못 알려져서 ‘금계(金溪)’가 되었다고도 한다

선무 마을은 금은계 마을에서 동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금계 마을의 악성이 거문고를 켜자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에 선녀들이 이곳에 내려와 춤을 추었다고 해서 선무동(仙舞洞)으로도 불렸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화로는 옛날 마을 앞 계곡의 물이 맑아 선녀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춤을 추며 놀다 갔다는 전설로 ‘선무곡’, ‘선무동’ 또는 ‘서무섬’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새실 마을은 초곡(草谷)이라고 불린다.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풀이 무성한 황무지여서 초곡(草谷)이라 불렀다. 그 후 마을이 생기면서 새실이라고 하였다. 또한 성주 읍기(邑基)가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인 와우형(臥牛形)으로 소 주변에는 풀밭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읍기의 북쪽을 ‘초전(草田)’, 남쪽을 ‘초곡(草谷)’이라 칭하였는데, ‘초(草)’는 순우리말로 ‘새’라 하였고 ‘곡(谷)’은 ‘실(室)’의 뜻으로 ‘초곡 (草谷)’이 ‘새실’로 변하였다고 전한다. 또 이곳은 한말(韓末)까지 파발(擺撥)이 통과하던 길목에 있어 주막이 발달하였는데, 주막이 있던 자리라고 하여 ‘주막걸[큰주막걸]’이라고도 부른다.

솔개 마을은 송포(松浦)라고도 불린다. 새실, 걸바대와 함께 조선 시대에는 초곡방(草谷坊)의 중심지였다. 약 370년 전 이성우(李誠宇)라는 학자가 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 소나무 숲이 무성하여 송포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걸바대는 문해(文海), 거평(渠坪), 문명동(文明洞)이라고도 불린다. 걸바대는 걸[거(渠): 시내], 바대[평(坪): 들]라는 고어의 복합어로 들과 냇물이 산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하여 ‘걸[(渠): 시내]’과 ‘바대[(坪): 들]’의 합성어로 마을 앞을 흐르는 초곡천(草谷川)이 비옥한 들판을 만들면서 하천과 들이 함께 있다고 하여 ‘걸바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초곡방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문명동, 신풍동, 송포동을 합하여 명포동이라 하고 초곡면과 조곡면을 병합한 성암면(聖巖面)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3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성암면과 용두면(龍頭面)을 합하여 용암면으로 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용암면 명포리가 되었다. 1989년 1월 주민들의 청원에 따라 선남면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명포리의 북쪽과 서쪽은 300m 내외의 비교적 높은 산지가 분포하고 남쪽과 남동쪽은 200m 내외의 산지가 분포한다. 북동쪽은 봉암천(鳳巖川)이 흐르면서 형성한 평야 지대이다. 봉암천은 용암면 중거리 성암산[556.1m]의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다. 장학리를 지나 명포리의 북쪽에서 흘러 들어와 명포1리 선무동 마을 부근에서 선무천과 만나 북동쪽으로 흘러가며 선남면 동암리 일대에서 백천에 흘러 들어간다.

두리티 소류지에서 발원하는 명포천(明浦川)은 명포1리 선무동 마을에서 선무천(仙舞川)으로 흘러 들어가는 소하천이며, 선무천은 명포리의 서단에 있는 가래골 저수지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 선무동 마을에서 명포천과 합류하여, 명포2리 걸바대 마을 아래에서 봉암천으로 들어가는 소하천이다. 선무천과 명포천은 규모가 작아 명포리 일대에 곡저 평야를 형성하는데, 선무천의 하천 수량이 명포천보다 많아 평야의 규모가 명포천의 곡저 평야보다 크다. 봉암천과 만나는 명포2리 부근에는 규모가 큰 충적 평야가 발달하였다. 선무천 일대에 형성된 평야로는 명포1리 은지 부근에 있는 가래골들, 금은계 마을 남쪽의 가쟁이들, 새실 마을 앞들인 상보들과 섬백이들, 선무동 마을 앞 북쪽 들인 정골들과 어리미들, 새실 마을 앞 중보들, 선무동 마을 서쪽의 하비네들이 있다.

선무천과 봉암천이 만나는 지점에 만들어진 평야로는 계배들이 있으며, 봉암천이 만든 평야로는 송포 마을 앞들인 못밑들과 물방꿈들, 병모들, 계배들과 중보들 사이에 있는 불밭들과 송포 마을 앞들인 새보들, 선남면 취곡리와 경계 지점에 있는 숲미들, 해땡이들 등이 있다.

[현황]

선남면의 서남단에 자리하여 동부는 선남면 유서리, 남부와 서부는 용암면본리리마월리, 북부는 선남면장학리, 취곡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1일 기준 면적은 6.630㎢이며, 명포1리와 명포2리 2개 행정리에 200가구, 377명[남 188명, 여 18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선남면 소재지에서 약 4.5㎞ 떨어진 곳에 있는데 명포리의 중심을 중부 내륙 고속 도로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통과하고, 남성주 참외 휴게소의 창원 방향 휴게소가 명포리에 있다. 새실 마을은 성주읍선남면의 경계인 별티 고개를 넘어 용암으로 향하다 도 제19호선과 군도 제14호선이 만나는 삼거리에 자리한다. 옛날 초곡방의 중심 지역이라고 전하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솔개 마을은 새실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군도 제14호선이 마을 앞을 지난다. 문화 유적으로 명포리 고분(明浦里古墳)과 명포리 고인돌군, 청송재(聽松齋), 침곡재(砧谷齋)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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