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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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成里 |
영어공식명칭 | Dose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도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윤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에 도인들이 많이 살아서 ‘도성(道成)’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다. 도성리의 자연 마을로는 광녕(廣寧) 마을, 마안골, 중리(中里), 못둑 마을, 농창 마을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원일(李元逸)이 지금의 광녕 마을 안 못 안으로 피난을 하였는데, 그 후 못 이름을 이원일의 호인 광녕당(廣寧堂)을 따서 광영지(廣寧池)라 하였다. 그 후 광녕지 주변에 마을이 조성되면서 광녕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안골은 마안(馬鞍)이라 불리기도 한다. 1592년(선조 25) 박유현(朴有賢)이 처음 마을을 만들 때 마을 뒷산이 말 안장과 같다 하여 마안(馬鞍)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마안골 서쪽에 있는 중리는 약 250년 전 처음 마을을 조성할 때 마을이 산 중간 지점에 있다 하여 중리(中里)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못둑 마을은 지원(池原)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100여 년 전 박일출(朴日出)이라는 선비가 못이 있는 곳에 집을 짓고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그로 인해 마을 이름을 못둑 또는 지원(池原)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못은 훗날 메꾸어 농경지로 만들었다. 농창 마을은 배나무정, 배내미, 배너머라고도 불리며, 지대가 낮아서 비가 오면 물에 잠겨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배너미, 배너머 등으로 불렸다. 이외에도 도성리에는 ‘감나무골’, ‘가라골’, ‘소골[속골]’ 등 몇 개의 마을이 더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이름만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화곡방(禾谷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06년 산남면과 오도면을 오산면으로 통합하고, 도남면과 화곡면을 남곡면으로 통합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광녕(廣寧)과 마안동(馬鞍洞), 동안동(東安洞)의 일부를 합하여 도성동으로 하고 남곡면과 오산면을 병합한 선남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선남면 도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도성리는 북쪽의 해발 고도 120m 내외의 구릉지와 중부의 곡저 평야, 남부의 충적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광영지 북쪽 구릉지에서 발원하는 광영천(廣永川)은 총 길이가 650m 정도이며, 도성리 광녕 마을에서 백천(白川)과 만나는 소하천이다. 못뚝 마을 뒷산에서 발원하는 못뚝천은 총 길이가 650m 정도이며, 도성리의 서쪽 경계를 이루는 구릉지 말단부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 마을의 남서쪽에 있는 박구 효자정려비 부근에서 남서류하여 백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도성리에서 가장 유로가 긴 하천은 중리천(中里川)으로 북쪽의 중리제에서 발원하며 총 길이는 2,765m이다. 중리천은 중리제에서 남쪽으로 흘러 도성리 중리 마을을 지나 마안동 마을에서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도성리의 남쪽 가장자리에는 백천이 못뚝 마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른다. 백천의 우안(右岸)에는 넓은 충적 평야인 반만리들이 있으며, 중리천에 의하여 마안동 마을 부근에 있는 서잡들과 진도리들이 만들어졌다. 광영천은 광영 고개 주변에 있는 서재들을 만들었는데, 도성리에 있는 평야는 대부분 참외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로 활용되고 있다.
[현황]
선남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약 2㎞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하여 동부는 선남면 소학리와 선원리, 남부는 용암면 문명리, 서부와 북부는 선남면의 유서리, 동암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1일 기준 면적은 4.151㎢이며, 도성리 1개 행정리에 418가구, 687명[남 379명, 여 30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광녕 마을은 국도 제30호선과 용암면으로 향하는 국지도 제67호선이 분리되는 광녕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300m가량 떨어진 구릉지에 있다. 마을 북서쪽에 이병선(李秉善)의 아내 유씨의 열부 정려문(烈婦旌閭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마안골은 선남 농공 단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남 농공 단지가 들어서면서 농촌 마을에서 공장 지대로 경관이 변화하였다. 중리는 최근 인근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점차 공장 지대로 변화하고 있다. 못둑 마을은 선남면 소재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1.7㎞ 거리에 있고, 국도 제30호선과 접한다.
문화 유적으로 선사 시대 유적인 도성리 고인돌, 경상북도 민속 자료인 박구 효자정려비(朴矩孝子旌閭碑), 밀양 박씨(密陽朴氏) 3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성주 도성리 삼효각(星州道成里三孝閣) 등이 있다. 교육 기관으로는 명인중학교와 명인고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