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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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官花里 |
영어공식명칭 | Gwanhw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관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윤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관산동과 정화동에서 한 자씩을 따와 ‘관화(官花)’라고 이름하였다. 관화1리 정화리(井花里)는 조선 전기 후반에 이화춘(李華春)이 입향할 당시 좋은 우물이 있고 주변에 회화나무가 무성하여 ‘정화(井花)’라고 부른 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마을 터가 우물[井]형이고 마을 뒤에 자리한 산이 심방산(尋芳山)이어서 이에 격을 맞춰 꽃나무를 우물가에 심고 정화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다.
관화2리 덤더리[덤섬, 덤뒤, 암동(岩洞), 대흥(大興)] 마을은 마을 앞에 덤섬이라고 하는 큰 바위 3개가 있어 ‘덤섬’이라고 불렀는데, 이태연(李泰淵)이라는 선비가 입향하면서 크게 일어나라는 뜻에서 ‘대흥’이라 개명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안산 마을은 정화 마을의 안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선남초등학교가 들어서고 나서는 교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화3리 떡뫼[독산(獨山)] 마을은 1927년쯤 신작로(新作路)가 개설되고 선남면 사무소[현 선남면 행정복지센터]를 정화리에서 이곳으로 옮긴 후 형성되었다고 한다. 백천(白川) 변에 동서로 뻗은 외딴 야산(野山)이 있어 떡뫼 또는 독산(獨山)이라 불렀는데,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따왔다. 말티 마을은 마현(馬峴)이라고도 한다. 소학리와 도흥리로 넘나드는 고개를 말티 고개라고 하는데, 이 고개 아래에 형성된 마을이라 ‘말티’라는 이름이 붙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오도방(吾道坊)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현재의 군 명칭인 성주군(星州郡)으로 확정하고 방(坊)을 면(面)으로 개편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오도면의 관산동, 정화동, 대흥동 일부와 산남면의 동천동 일부를 합하여 관화동이라 하고 선남면의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관화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관화리는 들판이 넓게 펼쳐진 평지에 있는 마을이다. 서쪽은 백천이 관화리의 경계를 따라 남동쪽으로 흐르며, 관화리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문화천이 통과하여 관화리를 이루는 남쪽 경계 부근에서 백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관화1리 정화 마을 부근에 문화천에 의하여 형성된 띰미들과 묵구실들, 서죽들이 있다. 백천에 의하여 만들어진 평야에는 관화2리의 덤더리 마을 부근 배다리들, 봉답들과 관화3리 독산 마을 앞 배다리들이 있다. 백천과 문화천이 만나는 문화천의 최하류부 반만리 마을 주변에 반만리들이 있다.
관화리 주변은 높이 200m 이내의 낮고 경사가 완만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정화 마을 뒷산인 심방산(尋芳山)과 백천, 문화천에 의하여 주변 산지와 떨어져 나온 독립 구릉의 형태로 독산이 존재하며, 이 산을 중심으로 독산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백천과 문화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 하천에 의하여 작은 골짜기들이 다수 형성되어 있다.
[현황]
관화리는 선남면의 중앙에 자리하여 동서남북이 선남면의 도흥리, 도성리, 동암리, 성원리, 오도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1일 기준 면적은 4.959㎢이며, 관화1리, 관화2리, 관화3리의 3개 행정리에 400가구, 688명[남 368명, 여 3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관화리는 선남면 행정복지센터를 비롯하여 각급 관공서가 자리한 선남면의 행정·교육·경제의 중심지이다. 선남면 생활 체육 공원이 백천 변에 있고, 선남면 행정복지센터 주변에는 선남우체국과 선남면 보건지소, 선남천주교회[선남성당]가 있다. 선남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북쪽으로 6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선남초등학교가 있고, 북서쪽에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성주사무소도 있다
관화3리 떡뫼 마을은 국도 제30호선이 마을의 중심을 통과하면서 상권의 중심지로 떠올랐으나, 마을을 우회하여 확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상권이 축소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선사 시대 고인돌군과 삼국 시대 유적인 토기 산포지(土器散布地)를 비롯하여 구암재(龜庵齋), 도성재(道聖齋), 모우당(慕宇堂), 춘헌정(春軒亭), 학포재(學圃齋), 원은재(園隱齋) 등 각종 누정과 재사(齋舍) 등이 산재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