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400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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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山里 |
영어공식명칭 | Geum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금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범 |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산(錦山)’의 지명과 관련하여 정확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다. 금산1리 자연 마을인 ‘연산’은 처음에는 인현산(印懸山)에서 유래한 인산(印山)이라 하였으나, 1663년(현종 4)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묘를 인현산으로 이장하면서 마을 이름을 인산(仁山)으로 고쳐 불렀다가 그 후 음이 와전되어 연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인현산[185m]은 예전에 고을의 수령들이 이곳에서 관인(官印)을 주고받았다고 하여 얻은 이름으로 전하며, 원래 성주 읍기(邑基)의 진산(鎭山)으로 신성시하여 묘를 쓰지 못하게 막았던 곳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금산리 지역은 1895년(고종 32) 5월 관제 개혁 때 지금의 성주읍 지역에 있던 용산면, 남산면, 본아면, 북산면 중 북산면(北山面)에 속하였다. 1914년 3월 행정 구역 개편 때 금산동으로 하고 4개 면[용산면, 남산면, 본아면, 북산면]을 합한 성주면의 10개 법정동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1979년 성주면이 성주읍으로 승격하면서 성주읍 금산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조례 제1076호에 따라 동(洞)을 리(里)로 개정하여 성주읍 금산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성주읍 북쪽 성주군 초전면과 접하는 곳에 인현산이 있다. 인현산에서 남으로 뻗은 산줄기는 성주읍성(星州邑城)의 봉두산(鳳頭山)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을 고을의 주맥(主脈)이라 하여 보호하여 왔으나 근래 벌채와 객토로 농경지와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크게 훼손되었다.
[현황]
금산리는 성주읍의 정북쪽에 자리하여 동부와 남부, 서부는 성주읍 학산리와 예산리, 백전리, 용산리, 용성리, 북부는 초전면 칠선리와 접한다. 2021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3.47㎢이며, 금산1리와 금산2리, 금산3리 3개 행정리에 285가구, 551명[남 295명, 여 25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경상북도 김천시와 통하는 지방도 제905호선이 지나가며, 도로 좌우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인현산 아래에 금산1리 연산 마을이 있다. 인현산을 경계로 북쪽으로 초전면과 접하며, 남으로 성주중학교 뒤편의 예산리까지 이어진 산줄기 동편으로 5개 자연 마을[연산, 도덕골, 고두무골, 와야골, 상당골]이 언덕을 경계로 인접하여 있었으나 2011년 조성된 성주 일반 산업 단지에 와야골이 편입되었다. 금산2리와 금산3리 사이에 자리한 성주고등학교는 1927년 성주농업보습학교로 개교하여 역사가 95년이나 되었는데, 그동안 1만 4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문화 유적으로 1663년 인현산에 이장한 정구의 묘소와 정구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인현재(仁賢齋)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신암(愼庵) 백추(白鶖)를 추모하는 경신재(景愼齋)와 백추 신도비가 금산1리에 있다. 금산3리 상당골 마을 회관에서 남쪽 약 200m 지점의 고개 양쪽에는 큰 바위 6개가 있는데, 바위 위에 성혈(性穴)과 절석(絶石)을 위한 쐐기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청동기 유적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