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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보를 시조로 하고 이다림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가평이씨의 시조 이인보(李仁輔)는 신라 때 완산(현 전라북도 전주시)의 호장을 지낸 인물이다. 『가평이씨세보』에 의하면 이인보의 8세손 이기문(李起文)이 조종에 이거하면서 본관을 조종으로 하였다가 조선 태조 때 조종이 가평에 편입된 후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이 가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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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가평이씨 묘역. 가평이씨 집안은 고려시대에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낸 이춘계(李椿桂)의 손자 이다림(李多林, 1394~1468)이 송리의 딸과 혼인하면서, 연산면 화악리에 세거하던 여산송씨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화악리와 가까운 청동리에 세거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다림의 아들인 이형손(李亨孫,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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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에 있는 백제시대 유물산포지. 갈산리 유물산포지는 논산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3.5㎞의 거리에 있는 갈산리 2구에 있다. 이곳은 부여와 논산을 연결하는 국도 4호선에 맞닿아 있는 곳으로, 해발 41m 내외의 단독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은 모두 논으로 개간된 경작지이며, 도로를 경계로 남서쪽에 백제시대의 유적인 원북리 주거지 유적과 정지리 백제 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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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1㎞ 떨어진 갓점마을의 서북향 계곡의 말단에 위치한다. 약 661㎡(약 200평)의 면적이 황폐된 채 남아 있는데 여기에서 약간의 기와편이 산견되었다. 절터에서 확인된 기와편은 조선시대 것으로 사찰의 조영시기를 조선시대로 추정할 수 있으며, 소규모의 암자형 불사가 자리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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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효열 정려. 강병흠은 진주강씨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이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다하여 섬겼고, 사망한 후에는 6년간 시묘살이를 하면서 항상 옷자락에 돌을 담고 다니며 고행하여 사람들이 포석효자(包石孝子)라고 불렀다. 강병흠의 처인 평택임씨 역시 시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였고, 남편이 죽자 자결하였다. 이들의 효열행을 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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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강응정의 정려. 강응정(姜應貞)은 모친이 병들자 3년여 동안 정성껏 봉양하여 천수를 누리게 하였고, 사망한 후에는 5년 동안 정성껏 시묘를 하였다. 강응정의 이런 효심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성종이 친필로 쓴 현판을 내리고 정려를 건립토록 하였다.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를 가면 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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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후삼국을 통일한 기념으로 세운 개국 사찰이다. 936년 창건되어 940년 완공되었다. 개태사 오층석탑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치하기 위해 건립된 석조물로 금당과 더불어 경내의 중앙에 위치하였다. 기단부는 대부분 결실된 채 탑신부와 상륜 일부가 남아 있다. 평면 방형에 탑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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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고려 전기 사찰 터. 태조 왕건은 936년(태조 19) 황산군(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서 후백제 신검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후, 삼국 통일이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여 연산면 천호리에 개태사를 창건하기로 하였다. 『고려사』 태조세가 19년조에 따르면 “이 해 광흥사, 현성사, 미륵사, 사천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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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에 있는 고려시대 저수용 석조. 장방형 혹은 원형의 화강암을 파서 만든 개태사지 석조는 구 개태사 주방에서 저수용으로 사용했던 석조물로 보인다. 석연지(石蓮池)라고도 불리는 석조는 석재 내부를 파내 물을 담는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표면에 문양이 없는 것과 연화문이 장식된 것이 있다. 개태사지 석조는 평면 장방형의 형태로서, 2기이다. 하나는 마을 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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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가마솥. 개태사 철확은 원래 개태사 창건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이 승려 5백여 명이 밥을 지어먹을 솥으로 내려 준 것이라고 전한다. 개태사가 폐허가 된 이후 벌판에 방치되어 있다가 1887년(고종 24)의 정해년 대홍수 때 4㎞ 정도 떠내려가 연산읍 앞 냇가에 방치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일본 사람들이 일본으로 가져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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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의 초대 왕. 아버지는 농민 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된 아자개(阿慈介)이며, 어머니는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 중 누구인지, 또 그 성씨가 무엇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동생은 능애(能哀), 용개(龍蓋), 보개(寶蓋), 소개(小蓋)이며 누나는 대주도금(大主刀金)이다. 견훤은 892년(진성여왕 6) 신라 왕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무진주(武珍州, 현 광주광역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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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경주이씨의 시조는 이알평(李謁平)이다. 이알평은 박혁거세가 왕이 된 뒤 아찬에 올라 군무를 장악했으며, 32년에 양산촌(陽山村) 이씨를 하사받았다. 경주이씨는 고려 후기 문인 이제현을 배출하면서 명문으로 성장하였다. 경주이씨가 논산 지역에서 언제부터 어떠한 경위로 세거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논산시 연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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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말기 논산 지역에서 신라군을 맞아 싸운 무신. 성왕이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매우 악화되었고 의자왕의 즉위 이래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는 당나라와 협력하여 서로 대립하였다. 결국 백제의 위기가 현실화되어, 660년(의자왕 20) 김유신(金庾信)과 소정방(蘇定方)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지금의 대전 동쪽 마도령과 백강(白江)으로 진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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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계백 장군 유적 전승지 일원에서 매년 4월에 계백장군의 충의·호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봉행하는 사당제. 논산시 계백장군유적지관리사업소에서는 삼국시대 위기에 처한 조국 백제를 구하고자 신라의 5만 대군에 맞서 죽음을 각오한 5천 결사대를 이끌고 장렬히 싸우다 전사한 계백 장군의 충의·호국 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국가관과 호국정신을 심어주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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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璜)을 시조로 하고 이민(李岷)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고성이씨의 시조는 한문제(漢文帝) 때 사람인 이반(李槃)의 24세손 이황(李璜)으로 알려져 있다. 고성이씨는 고려 말 이후에 성세를 보였으며,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36명, 상신 1명을 배출하였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이원(李原)이다. 이원의 가계(家系)는 고려의 명문으로 고조부는 충렬왕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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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절터.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가 1557년(명종 12)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작, 문외 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를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현재의 자리로 자리를 옮겨 절을 개창하였다. 원래 고운사가 있던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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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 고운사지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부도. 부도는 승려들이 열반한 후 다비가 행해지고 이 과정에서 생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은 불탑으로 부르고 있으며, 부도와는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다. 고운사는 원래 벌곡면 양산리에 있었으나 조선 중기 벌곡면 수락리로 이건하였다. 사역의 후면 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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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열녀 양천허씨 정려. 양천허씨는 조선 전기 태조 때 대사헌을 지낸 허응(許應)의 딸로 광산김씨 김문(金問)과 결혼하였다. 17세에 남편이 죽자 부모가 다시 출가시키려고 하므로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 집으로 가서 평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보인다. 양천허씨는 유복자인 김철산을 정성을 다해 키워 좌의정을 지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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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관촉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반야산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불상 중의 하나인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석조미륵보살입상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전하는 목조 건축물은 남아 있지 않다. 전형적인 산지가람으로 본래의 사역은 현재보다 더 넓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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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관촉사 석탑은 관촉사 내 관촉사 석등(보물 제232호)과 관촉사 배례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상층 기단은 하대갑석 상면에 조출(造出)된 2단의 중석받침 위에 있다. 상대중석의 각 모퉁이에는 우주(隅柱)가 조각되어 있고, 우주와 우주 사이에는 1개의 탱주(撐柱)가 모각(模刻)되어 있다. 상대중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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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물. 배례석은 일반적으로 사찰의 탑이나 불상 앞에 있는데, 예배 때 예를 올리거나 의식집행, 혹은 의식에 사용되는 향로나 촛대 등의 용구를 놓기 위해 조성한 석조물이다. 관촉사 배례석은 관촉사 석등에서 동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진 화단에 있는데, 뒷면에 관촉사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관촉사 배례석은 장방형으로 상면에 연화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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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조물. 관촉사 석문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고증할 만한 기록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없다. 석문의 경우 특히 다른 사찰에서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비교 자료 또한 없는 실정이다. 관촉사가 조성된 이후 참배객들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 네 곳에 문을 달고 담을 둘렀다고 하는데, 관촉사 석문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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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광을 시조로 하고 김약채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광산김씨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말기 신무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자 신라의 비운을 예견한 김흥광은 무주(武州, 현 광주광역시 평장동)의 서일동에 피신 은거함으로써 시조가 되었다. 광산김씨 가문은 조선시대에 총 260여 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여기에서 정승·대제학·청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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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양촌리 평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광산김씨 효열부 3명에게 내려진 정려. 조선 명종 때 광산김씨 가문의 사당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이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조상의 신주를 꺼내 오기 위해 불길에 싸여 있는 사당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할머니가 나오지 않자 그 며느리가 뒤를 이어 사당 안으로 들어갔고, 또 아무런 소식이 없자 곧이어 손자며느리도 뒤를 따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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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중기 사찰 터. 조선 중기 문신 김계휘는 1557년(명종 12) 윤원형 당에 의해 삭탈관직, 문외출송을 당하자 연산 지역으로 퇴거해 와서 고운사 경내를 빌려 서재로 사용하고, 편액을 정회당이라 하였다. 그 후 효종이 고운사 땅을 김집에게 사패지로 하사하자 고운사는 왼쪽 능선 너머에 있는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로 옮겨 갔다.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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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금곡서원은 1682년(숙종 8) 기호사림의 종사였던 신독재 김집이 발의하였으며 노론의 거두인 송시열, 송준길 등이 추진하였다. 금곡서원 건립의 주도 인물들을 볼 때 서원의 건립은 기호사림, 또는 노론의 강력한 지지, 광산 김씨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건물의 상량문을 지은 인물은 윤증으로, 건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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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를 지낸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형은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후 감찰, 정언, 병조좌랑, 병조정랑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에 승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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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겸광의 묘소. 본관이 광산(光山)인 김겸광은 1453년(단종 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그 뒤 감찰, 정언 등을 거쳐 1460년(세조 6) 장령으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신숙주(申叔舟)의 종사관이 되어 건주위(建州衛)의 야인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군기시정에 오른 뒤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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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명.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현손(玄孫)이다. 아버지는 현감 김호(金鎬)이며, 어머니는 공조정랑 이광원(李光元)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며, 형은 김계휘(金桂輝)이다. 조카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김공휘는 율곡(栗谷) 이이(李珥)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월사, 김선원, 김청음 등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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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공휘 묘비.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 문하에서 수학하여 경전과 예학을 강구한 김공휘는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는데, 어느 요직에서건 치적이 현저하였다. 김공휘는 연산 휴정서원에 배향되었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를 가면 남측에 도로가 있다. 여기에서 1.3㎞를 들어가면 광산김씨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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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관경(觀卿), 호는 서석(瑞石).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우는 김겸광(金謙光)이다. 김국광은 1441년(세종 24) 문과에 병과 7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445년(세종 28) 황해도도사로 승진하고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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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의정공파 종중에서 행하는 김국광의 불천위제사.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은 조선 세조 때의 명신으로 이시애의 난에 공을 세워 정충출기적개공신의 호를 받고 숭록대부좌찬성에 봉해졌다. 1469년(예종 1)에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영경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좌의정이 되어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왔다. 1471년(성종 2)에는 순성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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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국광의 사당.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의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서석(瑞石)이다. 세종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 등을 역임하였고, 세조 때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맞아 함경도 경차관으로 공을 세워 병조 참판, 병조 판서에 이르렀다. 1467년(세조 13)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남이 장군과 함께 평정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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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기범과 김재준 부자의 정려. 김기범의 호는 석계이다. 광산김씨로 아버지는 김재준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드시고 싶다는 음식은 반드시 구해 드리고, 어머님이 병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자 아침저녁으로 직접 음식을 떠 드리면서 봉양하였다. 김기범의 부친 김재준의 자는 사영, 호는 춘당이다. 김재준은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김재준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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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원실보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김기서와 김재형 부자의 정려. 김기서는 광산김씨로 아버지는 김재형이다. 김기서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한겨울에 냇가에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봉양하면서 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상례(喪禮)를 다하고 3년간 매일 성묘하였는데, 묘소 앞에 김기서가 무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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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연서리에 있는 조선 말기 현감 김기순의 불망비. 불망비는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줄인 말로 선정을 베푼 것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건립하였다. 그러나 김기순 불망비가 어떠한 연유로 이곳에 세워지게 되었는지 자세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현감 김기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백성들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순 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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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준영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김녕김씨의 시조는 김시흥(金時興)으로, 경순왕의 8세손이라고 한다. 김시흥은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을 거쳐 동북면병마사를 지냈고, 광록대부평장사에 올랐다. 김녕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김녕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김녕은 김해의 옛 지명으로, 가락국의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와 신라의 김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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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에 있는 조선 말기 진주강씨의 정려. 진주강씨는 금령김씨 김두한(金斗漢)의 처로서, 강재윤의 딸이다. 결혼하여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눕자 남편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짐작하고, 자신의 넓적다리를 베어내고 손가락을 잘라 공양하는 등 지극 정성으로 병수발을 들었다. 그럼에도 남편이 죽자 자결하려 하였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실패로 돌아간 뒤 평생 수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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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 장선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김수의 처 완산이씨 정려. 완산이씨는 고령인 남편 김수(金檖)가 죽자 뒤를 따라 죽었다. 이 사실을 알고 조정에서 1772년(영조 48) 정월에 정려를 내렸다.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시 탄천면으로 통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6㎞쯤 가면 공주시와 논산시의 경계 지점에 호암리 장마루마을이 있으며,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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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관 김수문의 신도비 귀부. 김수문(金秀文)은 명종 때의 무관으로 자는 성장(成章), 호는 양촌(陽村)이고, 본관은 고령으로 김임(金銋)의 아들이다.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영달만호(永達萬戶)가 되어 야인들과의 전투 후 종성(鍾城)에서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는 제주목사로 공을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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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임의 신도비. 김임의 본관은 고령, 자는 평경(平卿)으로 김수문의 부친이다. 김임은 노성에 거주하면서 1513년(중종 8) 진사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는데, 당시 만석꾼으로서 인근 30리가 그의 소유지였다. 이에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선비로 살면서 객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풍류를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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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후손들이 행하는 김장생의 불천위제사. 김장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본관은 광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의 아들이며 김집(金集)의 아버지이다.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사서(四書)와 『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으며 20세 무렵에는 이이(李珥)에게 사사했다. 예학(禮學)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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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장생을 제향한 사당. 조선 후기 호서사림을 대표하였던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은 본관이 광산, 호는 사계(沙溪)이며, 대사헌 김계휘의 아들이다. 송익필과 이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당대를 대표하는 대 유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우리나라 예학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늦은 나이에 과거 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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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재경의 정려. 김재경은 광산김씨 7대조에 자식이 없어 양자로 들어갔는데, 양자로 들어간 뒤 양어머니가 아들 셋을 낳으면서 김재경을 구박하였지만 효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주위에 김재경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64년(고종 1) 정려가 내려졌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를 가다가 남쪽 도로로 2.5㎞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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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숙진1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중창의 정려. 김중창(1619~1684)은 본관이 광산이다. 광산김씨로 부원군 김국광의 7세손이며, 충곡서원에 배향된 김정망의 아들이다. 1654년 생원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중창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대변을 맛보면서 병세를 짐작하였고 단지(斷指)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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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양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김집의 묘소. 김집의 본관은 광산으로,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이다.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다.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고,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광해군의 문란한 정치를 보고 은퇴하여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인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은거하게 된다. 인조반정 뒤 다시 등용되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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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노성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노성산성 봉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조선시대 읍지들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에 의하면 “봉화가 관아의 북쪽 산성에 한 군데 있다. 서쪽으로 은진 노산(蘆山)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공주 효포산(曉浦山)에 신호를 보낸다.”라고 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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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노성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4성위(四聖位)를 모셨으며,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동국 9현을 모셔 모두 5성 20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춘추의 제향시에는 주로 성동면, 광석면, 노성면, 상월면 지역 유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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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노성향교의 대성전. 노성향교는 노성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고 유도를 연찬(硏鑽), 강론할 목적으로 노성산 아래향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이다. 노성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5성위를 모시고 있다. 동무에는 송조 1현과 동국 9현의 위패를 모셨다. 서무에도 송조 1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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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터. 영조 연간에 편찬된 『노성군읍지(魯城郡邑誌)』와 1759~1765년 사이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아사(衙舍) 38칸, 객사(客舍) 31칸, 현사(縣舍) 3칸, 작청(作廳) 6칸, 군기(軍器) 6칸, 관청(官廳) 13칸이 있었다. 그러나 1895년에 발간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는 아사 15칸, 책실(冊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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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노티리 사지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장마루에서 호암리 방향으로 약 1.8㎞ 거리에 위치한 노성면 노티리 가재마을(호암산의 서향사면)의 동쪽 끝(호암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은 산 중턱을 정지하고 조성한 것으로 보이나 현재 사역으로 추정되는 면적은 약 990㎡(약 300평)이며 이들은 모두 밭으로 개간되었지만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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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개태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논산 개태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은 본래 개태사지에 있던 것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 놓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언제, 어느 곳에서 옮겨 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개태사지에서는 발굴 조사 결과 건물 터가 확인되었고 개태사의 명문기와도 수습되었다. 아울러 구 개태사를 조성하기 위해 축조해 놓은 석축도 마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논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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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조물. 석등은 백제 시대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사찰 경내에 조성된 석조물이다. 교리적 측면과 실용적 측면이 융합되어 주로 사찰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논산 관촉사 석등은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및 관촉사 앞뜰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논산 관촉사 석등은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앞에 있는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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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관촉사 사적비에 따르면, 968년(광종 19)에 사제촌의 여자가 반야산 서북쪽 모퉁이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는데, 홀연 동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보니 큰 돌이 땅 속에서 솟아나오고 있었다.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사위에게 말하니, 사위가 곧 현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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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노강서원은 윤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1682년(숙종 8)에 사액을 받았다. 성향은 기호계이며, 윤황을 주향으로 하고 윤문거(尹文擧), 윤선거(尹宣擧), 윤증(尹拯) 3인을 추향하는 서원이다. 논산시 광석면에서 북쪽으로 약 1.3㎞를 가면 오강리로 건너는 덕포천 운교(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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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 돈암서원은 김장생의 문인들이 스승을 추모하여 사우를 건립한 뒤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 오다 사당 앞에 강당을 건립하면서 서원의 단초를 이루었다. 또한 돈암서원은 1659년(효종 10)에 이어 1660년 (현종 1), 두 번 사액을 받은 특이한 사례이다. 돈암서원은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서 호서 지역 전체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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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 돈암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강당. 돈암서원의 강당 건물로 1634년 서원 창건시 건축하였고 강학 공간으로 사용 및 호서 사림의 활동 거점으로 이용되었다. 강당이 사당 방향과 직각으로 배치되는 예는 그리 흔하지 않으나, 논산 돈암서원 응도당은 강학 공간에서 앞면에 직각 방향으로 틀어져 배치되어 있다.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연산역 남쪽 국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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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 건물. 쌍계사는 논산의 최남단으로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작봉산[불명산]을 주산으로 삼고 있으며, 사찰 이름에서 살필 수 있는 것처럼 두 계곡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화재로 폐기된 것을 1716년(숙종 42)에 중창하였고, 1736년(영종 12) 화재로 전소된 것을 1739년 다시 중건하였다. 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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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논산 덕평리 석조여래입상은 현재 무릎 이하 부분이 흙에 묻혀 있어 원래의 크기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남아 있는 불신만 1.95m인 거상이다. 머리 부분은 다소 마멸되었으나 육계가 큼직하며 얼굴이 풍만하고 이마의 백호 형태가 확인된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면서 복스러운 편이나 얼굴 전체에 비해 작게 표현되어 조잡한 모습을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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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마애불. 논산 수락리 마애불은 대둔산 정상부의 북서쪽 비탈 바위에 새겨져 있다. 논산 수락리 마애불은 바위 벽면에 음각된 불상으로 전체 길이 2.7m, 가슴 넓이 99㎝이다.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고, 왼손은 손가락을 펴서 가슴에 얹은 모습이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발 부분까지 내려져 있다. 주름이 발목까지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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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신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논산 신기리 지석묘는 논산과 완주를 연결하는 지방도 697호선 서쪽에 있는 신기리 괸돌마을에 있다. 고인돌의 동북쪽 앞으로 장선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서남쪽에는 높은 산이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즉 주변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하천 변의 충적지에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다. 논산 신기리 지석묘에 대한 조사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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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부적면소재지에서 연산면으로 이어진 국도 1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신풍리로 접어드는 도로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4㎞가량 더 가면 부적면 신풍리 풍덕말이 나온다. 논산 신풍리 마애불은 풍덕말 동쪽에 솟은 고정산 남쪽 비탈에 있다. 신풍리 마애불 남쪽 가까운 곳에 영사암이 자리하고 있다. 논산 신풍리 마애불은 10여m가량의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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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웅진 천도로 논산 지역이 차지하는 사회·문화적 역할이 증대되면서 충청남도 논산시 일원에는 많은 백제시대 고분군과 생활유적이 조성되었다. 특히 고분 문화는 당대의 장송 의례에 따른 문화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논산 지역 백제 고분군과 출토유물을 검토하면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나누어 살필 수 있다. 백제시대 논산 지역은 3개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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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탑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논산 탑정리 석탑은 원래 지금의 탑정저수지 지역에 있던 어린사(魚鱗寺)라는 절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절이 수몰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온 것이라고 전한다. 전언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견훤을 정벌할 때 이곳에 주둔하여 어린사를 지었다고 한다. 절의 주위에는 옛 성이 둘러싸고 있었으나 없어졌다고 하며, 석탑은 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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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논산 표정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 조사는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도구머리 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당골 고분군), 공주대학교 박물관(하표정 고분군)에 의하여 3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서로 인접해 있으면서도 각각의 조사된 고분 명칭이나 내용 면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논산 표정리 도구머리 고분군과 논산 표정리 당골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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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터. 요지는 토기·도자기·질그릇·오지그릇·기와 등을 구워내는 시설로서 가마터·가마사지·점터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에는 토기를 가마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맨 땅 위에 쌓은 후,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일찍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였다. 원시적 개방요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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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세기~A.D. 3세기경 한강 유역으로부터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 집단의 통칭. 『삼국지(三國志)』 동이전에는 마한에 속한 55개 소국(小國) 명칭이 열기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였다고 한다.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나라의 지배자는 읍차(邑借)라고 하였다. 삼한의 소국들은 70여 개국에 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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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명암리에 있는 고려 후기 기와 가마터. 명암리 와요지는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이 지원하여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논산 지역 문화유적지표조사 과정에서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지표상에서 기와를 구웠던 가마의 구조나 전체 범위를 알 수 있는 흔적은 없으나 많은 양의 기와 조각과 가마 벽이 파손되는 과정에서 노출된 것으로 판단되는 소토 조각이 나온 것으로 보아 가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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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호·김계휘를 제향하는 재실. 모선재는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조부(祖父)인 김호와 부친 김계휘(金繼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자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략 1700년대 초반인 것으로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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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채광리 바랑산에 있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고분군. 바랑산은 양촌면 채광리 동쪽에 있는 계곡을 따라 약 500m 정도 들어간 곳에 위치하며, 해발 550m의 비교적 높은 산으로 논산시 벌곡면과 양촌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바랑산 고분군은 산 정상에서 양촌면쪽으로 흘러내린 산곡 구릉의 말단에 위치한다. 고분은 현재 지표면에서 약 10여 기가 확인되며, 오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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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열녀. 본관은 전주. 익안대군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눌(李訥, 1552~1631)이며, 남편은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朴東民, 1566~1593)이다. 슬하에 3형제를 두었다.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는 노모께 효도를 하고 남편에 대한 내조에 최선을 다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이씨는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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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 정려. 열녀 박동민의 처 전주이씨(1556~1593)는 익안대군의 7세손으로 이눌(李訥)의 딸이고, 영사재에 제향된 박동민의 처이다. 전주이씨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편과 함께 노모를 모시고 아들 3형제와 피난을 떠났다. 그러나 노성 대우리에 이르러 남편이 장질부사로 죽었고, 이씨는 남편을 따르기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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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박상문의 정려. 박상문(朴尙文, 1615~1672)의 본관은 무안, 자는 욱재(郁哉)이다. 무안박씨로 할아버지는 박종원이고, 아버지는 박훈이며, 박증의 5대손이다. 박상문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났는데, 이와 관련하여 무겁교 일화가 전한다. 무겁교는 상월면에 있었던 다리인데,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단지(斷指)하여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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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병암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상준의 처 은진송씨 정려. 열부 은진송씨는 송치덕(宋致德)의 딸이고, 수원 백상준의 부인이다.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이 깊었는데, 16세에 출가하여 1년도 못 되어서 남편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송씨 부인은 정성을 다해 치료하고 시부모님 또한 극진히 봉양하니, 남편의 병도 좀 나아졌다. 남편의 병이 어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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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관 이삼의 영정을 모신 사당. 이삼(李森, 1677~1735)의 본관은 함평이며,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힘과 담력이 뛰어나 병조판서 김구의 권고로 무예를 연마,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정주목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지내면서 군제 개혁에 관심을 기울였고, 경종 때 소론으로서 우포도대장, 총융사, 어영대장을 역임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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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 백일헌 영당에서 음력 9월 20일 이삼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지내는 제사. 백일헌 영당은 함평이씨 함성군파 종중이 조선시대 무관인 이삼(李森, 1677~1735)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영조는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이삼의 공을 치하하여 ‘충성은 흰 해를 뚫는 의리[忠貫白日之義]’라 하여 ‘백일헌’이란 시호를 손수 써서 내렸다. 상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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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관할의 논산 지역의 역사. 백제(百濟)는 고구려·신라와 함께 한국 역사에서 삼국시대라는 각축전을 전개한 고대국가의 하나로 부여 계통의 여러 이주민 세력이 한강 유역의 선주민과 결합하고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온조왕을 시조로 하여 B.C. 18년 현재의 한강 하류인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475년 고구려의 침략으로 인해 한성(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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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상(李常)의 영정을 모신 사당. 백파(白波) 이상(李常)은 태조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益安大君) 이방의(李芳毅)의 손자이다. 이상의 아들인 이현동(李賢童)은 세조가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벌곡면 조령리에 낙향한 후 정착하였고, 조선후기에 그 후손들이 백파 이상 영당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벌곡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호남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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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에 있는 조선 중기 노성현감 유몽열(柳夢說)이 세운 서당. 상월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91호선을 타고 좌회전하여 상월교, 학당교를 지나 2㎞ 정도 가다 보면 학당리 입구에 도착하는데, 보인당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1566년(명종 21) 학당리 도룡골에 건립된 보인당은 노성현감 유몽열(柳夢說)의 주도로 세워졌다. 율곡 이이가 지은 「보인당기」에는 노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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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사원. 봉곡서원은 이계맹(李繼孟), 이순인(李純仁), 남명한(南溟瀚), 진극효(陳克孝), 남두건(南斗建)을 제향한 곳으로, 우암 송시열과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의 발의로 창건되었다.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2.48㎞를 가면 논산시 연무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약 2.94㎞를 가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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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조선시대 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 봉수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설치한 통신 수단으로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되었다.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봉수대를 두어,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써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4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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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아들 서융(徐隆, 부여융이라고도 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융은 660년(의자왕 22)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멸망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다. 당나라 고종은 서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후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서융의 원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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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 있는 조상의 위패·영정을 모셔 두고 제향을 행하는 장소. 사당이란 조상의 위패나 영정을 배향하고 매년 기일에 제사를 올리는 건조물을 말한다. 특히 이름난 학자나 충신 등의 공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건립된 사당을 향현사(鄕賢祠)라고 한다. 조선 태종 때에는 고려 이후의 명신을 예조에서 명단을 작성해서 각각 연고지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권장하였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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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 승적골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산직리 승적골 고분군은 산직리 승적골 북쪽에 있는 능선의 남서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승적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으며, 그 위에는 승적골못이 있다. 산직리 승적골 고분군은 승적골못으로 올라가는 길의 북동쪽에 있는 산사면에 위치한다. 산직리 승적골 고분군은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정밀한 발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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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윤증이 살던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윤증 고택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의 입지 형태는 노성면 교촌리 남쪽으로, 개잣들이 펼쳐지고 들 가운데로 노성천이 흘러 지나간다. 북편으로 약한 구릉이 솟아 니산(尼山)이 되고, 니산 자락이 주택의 배면을 형성하고 있다. 니산 자락이 남으로 흘러 마을의 계면부를 형성하면서 서쪽에 노성향교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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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로 구분된다. 이는 덴마크의 톰센(C. J. Thomsen)이 제안한 3시대 체계[Three age system]에 따라 인류가 생산한 유물에 따라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의 3대 시기로 구분한 것에 기초한 것이다.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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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는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로 고고학적으로 발굴 조사된 자료를 기초로 그 시대상을 복원한다. 논산 지역은 인문적 환경이 비교적 높은 수준이어서 선사유적과 유물이 매우 풍부함에도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 원인은 백제의 도읍이었던 인근의 공주와 부여를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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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삼문의 묘비.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은 1435년(단종 1)에 생원 급제하였고, 1438년 대과에 급제하여 세종, 문종, 단종을 내리 섬기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단종이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세조에 의해 처형을 당하였는데, 지금의 노량진역 부근에서 다리를 꿰뚫고 사지를 찢는 처형을 받았다. 이런 성삼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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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양촌리에 조성된 조선 전기 문신 성삼문의 묘소.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은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에 급제하고, 1447년(세종 29)에는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한글 창제에도 공로가 크다. 그러나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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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송당마을에 있는 시대 미상의 고분군. 논산시 노성면에서 서쪽 방향으로 4㎞ 정도 가면 호암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도로 오른쪽에 송당리 송당마을이 있다. 송당리 고분군은 송당마을 서쪽 낮은 야산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현재 고분이 위치한 지역에는 10~15년 정도 된 리기테타 소나무가 들어서 있어 고분 유구를 쉽게 확인할 수 없다. 이미 도굴이나 파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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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 전기 절터. 송당리 사지는 노성면소재지 서쪽에 있는 노성산(320m) 남쪽 기슭에 있다. 정식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절터에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문양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세워진 절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 전기에 많이 제작된 분청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에도 한동안 유지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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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송불암에 있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불상. 송불암 미륵불은 석불사라는 옛 절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당시의 석불사는 지금의 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50m 들어간 산기슭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없어졌다고 전한다. 현재의 송불암(松佛庵)이란 명칭은 송불암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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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숙진1리 숙진골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숙진리 고분군은 숙진골 동쪽에 있는 해발 25m 내외 구릉의 남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개간으로 인해 노성천변의 넓은 들판 사이에 있는 단독 구릉지대처럼 되어 있으나, 원래 지형은 북쪽 산에서부터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말단부의 저지대에 해당된다. 따라서 지형상으로는 북쪽의 숙진1리 만성리와 정골의 구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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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신충리는 논산과 공주를 잇는 도로변에 있는 마을로 상월면 소재지에서 공주 쪽으로 약 500m 지점에 있다. 신충리 고분군이 있는 신충리 북단은 노성산성이 있는 노성산의 북동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산에서 흘러내린 끝자락이다. 신충리 고분군에 대한 지표 조사가 실시된 적은 없다. 신충리 고분군은 동쪽으로 뻗은 구릉의 남쪽 비탈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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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쌍계사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군. 부도는 승려들이 열반한 후 다비가 행해지고 이 과정에서 생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이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석조물은 불탑으로 부르고 있으며, 부도와는 엄밀하게 구분되고 있다. 쌍계사 부도는 쌍계사에서 입적(入寂)한 고승들의 유골이나 사리(舍利)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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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의 공신 김완의 영정을 모신 사당. 본관이 김해인 김완(金完, 1577~1635)은 임진왜란 때 용맹이 알려져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복남 휘하에 들어갔다. 이때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방어사 막하로 갔다가 전라도병마절도사 이광악을 따라 남원으로 갔다가 부친을 무고하여 죽게 한 한덕수가 병력을 점검하자 칼로 찔러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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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안심8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양응춘에게 내려진 정려. 양응춘은 청주양씨로, 자는 인경(仁卿)이고,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현감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청주성의 탈환전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이어서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왜적을 베었으나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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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신충리에 있는 조선 말기 충신 양함의 정려. 양함(1564~1592)은 본관이 남원으로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였고, 함창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신립과 함께 충주 탄금대 아래 달천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맞아 최후까지 선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하였다. 양함이 죽은 후 300여 년이 지난 1886년(고종 23)에 명정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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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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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덕암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연산에서 공주 방향 도로를 따라 약 8㎞ 정도 가면 연산면 덕암리에 이른다. 덕암리 고분군은 덕암리 행경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 방향으로 흘러내린 구릉 남사면의 비교적 경사가 심하게 이루어진 곳에 입지해 있다. 1992년 10월 28일 논산시 향토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 고분은 대부분 입구를 남쪽으로 향한 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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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연산리 석탑은 구연산(舊連山)이라 불리는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연산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석탑은 비교적 밀집된 주택지의 동쪽인 분지형 구릉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연산리 석탑은 높이 3.8m에 4층의 탑신(塔身)을 지닌 화강석으로 꾸민 것인데 약화된 기단(基壇)과 탑신부, 복발(覆鉢: 상륜 등의 노반 위에 있는 발을 엎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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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정리에 있는 고려시대 마애불. 연산면 면소재지에서 대전 방향으로 3㎞쯤 가면 송정리 하송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의 서쪽 산 능선에 있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계룡산 줄기의 남단에 해당한다. 연산 송정리 마애삼존불 앞 왼쪽에 개태사가 있다. 높이 4.3m, 너비 3.5m의 수직 화강암 벽에 선각한 입상의 삼존불이다. 불상의 높이는 본존불 3.2m, 우협시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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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연산현 관아를 출입하였던 정문. 연산면소재지인 청동리의 동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1.6㎞쯤 가면 구 연산면소재지 인 연산리가 나온다. 이곳 농촌지도소 연산지소 서쪽에 연산아문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 양식 2층 목조누각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직사각형의 돌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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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용화사에 있는 고려 전기 불상.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용화사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구 개태사지(開泰寺址)에서 출토된 것으로, 처음 발견했을 때 불두가 파손되어 있었으나 최근에 보수되었다.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되었다. 연산 천호리 비로자나석불은 높이 110㎝로, 화강암으로 조상하였다. 왼쪽 무릎을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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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 처음 설립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와 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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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연산향교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대성전. 연산향교는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을 배향하고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태종대에 현감으로 부임한 박곤(朴坤)이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서무가 있고, 교육 공간으로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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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 터. 조선시대 연산현의 객사로 읍치의 중심인 객사에서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따라서 객사는 수령의 집무청인 동헌보다 높은 곳에 있었고, 관아 시설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전망 또한 좋은 곳에 자리하였는데, 이 때문에도 관아 안에서는 가장 위압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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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연산현의 관아 터. 관아(官衙)란 조선시대 읍치에 있던 관청건물을 통칭하며 연산현 관아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헌, 국왕의 위패를 모셔 둔 객사, 고을 양반들의 대표자 격인 좌수와 별감이 있는 향청, 아전들이 근무하던 질청, 기생과 노비들이 있는 관노청 등이 있었다. 정조 연간에 간행된 『연산현지』에 따르면, 연산현 관아에는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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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지금의 영사암이 있는 터에 처음 절이 세워진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나 언제 없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 영사암지에 있는 암자는 조선시대 1465년(세조 11) 문인 김철산(金鐵山)이 부모의 묘를 모시기 위해 건물을 짓고 암자에 ‘영사암(永思庵)’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1875년(고종 12)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한다. 부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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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영은사지에 있는 조선시대 부도.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의 바랑산 북곡(北谷) 내에 위치하는 영주사는 최근에 새로 조성된 사찰로, 영은사(靈隱寺)라는 구사지(舊寺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사역 내의 대웅전 전면 북측에 부도 1기가 남아 있는데, 이 부도는 영은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은사지 부도는 석종형(石鐘形)으로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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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예의 본질과 의의 및 시비를 탐구하는 유학의 한 분야. 오늘날 충청 지역은 충절과 선비의 고장, 양반의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한 상징의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시대 가장 오랜 기간 정권을 잡았던 기호학파의 존재가 드러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논산 지역에 뿌리내린 호서사림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전기 경기 지역의 사림에 종속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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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암각군. 옥녀봉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금강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금강이 옥녀봉 앞에서 휘돌아 흘러 넓은 강폭을 이루며, 잔잔한 물가에 물고기들이 노닐며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자연 경치를 즐기며 곳곳에 암각을 새겨 놓은 것이라 추측된다. 그리고 암각 해조문은 선박들의 왕래를 돕기 위해 조수가 들어오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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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 용암사의 연혁을 확인할 만한 자료는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제 말엽인 660년경 채운향(彩雲鄕)에 낙안사(落雁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이 용암사의 전신(前身)이었다고 한다. 낙안사는 고려 말기에 강경 옥녀봉에 옮겨 세워졌고, 절 명칭을 용암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5년 후 다시 본래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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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절터. 상월면 산성리에서 상도리를 거쳐 신원사 방면으로 도로를 따라 5㎞가량 가면 오른쪽에 용화사지가 있다. 신원사에서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계룡산 서쪽 줄기의 남쪽 비탈면에 해당한다. 절터에 새로 조영된 용화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절터 가운데 암벽에는 마애불 1구가 새겨져 있다. 절터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기와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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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상도리 용화사지 주변에서 확인된 시대 미상의 불상 머리 부분. 용화사지 불두는 용화사지의 사역(寺域) 뒷면 계룡산 서쪽 사면에 약 165.29㎡ 규모의 평탄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용화사지 불두는 본래 현 위치에서 위로 5m 떨어진 거리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목 부분 이하는 결실되었고, 머리에 육계(肉髻)의 형태가 있는데 절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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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월성리 월명산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월성리 산성이 자리한 월성리 일대는 논산 강경 일대에 펼쳐져 있는 이른바 논강평야의 일부로, 주변 지역이 드넓은 평야로 되어 있다. 이 평야 지대에 해발 70m의 월명산이 있다. 월성리 산성은 월명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월명산은 해발 70m에 불과하지만 주변 지역이 온통 평야로 되어 있어 주변을 손쉽게 내려다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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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3㎞를 가면 병사교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봉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에 유봉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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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죽림리 원고개에 있는 조선 말기 효자 윤상정의 정려. 윤상정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자는 익삼(益三)이며, 생원에 합격한 인물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웠을 때 항상 어머니의 분뇨를 직접 처리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고 1891년(고종 28)에 명정하여 효심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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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은진 관촉리 비로자나석불입상은 높이 340㎝의 화강석으로 만든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이다. 낮은 육계(肉髻)를 지닌 머리는 윤곽이 뚜렷하며, 귀가 어깨까지 내려와 있다. 얼굴은 둥그렇고 풍만한 모습을 지녔는데, 이마의 정중앙에는 백호공이 선각되어 있고, 눈썹을 선명하게 음각으로 표현하였으며, 그 아래 은행알 형태의 눈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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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관학 교육기관. 논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2.36㎞ 가다 보면 은진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은진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0.75㎞ 가면 향교길이 나오고, 여기서 다시 좌회전하면 은진향교가 나온다. 은진향교는 15세기 익성군의 묘소가 있는 은진면 용산리에 세워졌다. 이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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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겸 부부의 정려. 이공겸은 왕실의 종친으로 옥계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의 증손이다. 이공겸과 그의 아내 민씨는 양촌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공겸 내외는 부친을 등에 업고 공주를 향하여 피난하기 시작했다. 연산 백석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왜병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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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효자 이관연의 비각. 이관연은 가평이씨(加平李氏)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후에는 3년간을 하루같이 곡을 했으며, 어머니 광산김씨(光山金氏)가 병들자 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생명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 때와 똑같이 행하니 효자 중의 효자라고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 후에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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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민진의 정려. 이민진의 본관은 가평, 자는 자선, 호는 백봉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의병 3천 명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다. 당시 29세의 이민진은 출전할 때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 그러나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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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함평이씨 논산 입향조. 본관은 함평(咸平). 아버지는 부사 이양, 어머니는 진주강씨이다. 세 번 혼인했는데, 양씨와 민씨와 전씨이다. 슬하에는 두 딸과 외아들 이삼, 서자 이송이 있다. 1639년(인조 17)에 이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학업을 잇지 못하였다. 장성하여 청주양씨 양여필(楊汝弼)의 사위가 되어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들어가 살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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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원백(遠伯). 영조의 아낌을 받아 백일헌(白日軒)이라는 호를 받았다. 함평군 이사길(李師吉)과 남양전씨 사이에서 1677년(숙종 30)에 태어났다. 이삼의 가계는 상계로 올라가면 무반 가문의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고조 이후는 문반으로서의 성향이 더해져, 이삼이 ‘문무겸전’의 인물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삼은 윤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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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이선익의 정려. 이선익(李善益)의 자는 우현(友賢), 호는 야은(野隱)이며, 본관은 가평이다. 어린 시절부터 효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겨울철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홀어머니를 봉양할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10여 년 동안 손수 탕약을 끓여 올렸으며, 병이 위독해지자 양손의 손가락을 잘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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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이선일의 처 전주이씨의 정려. 전주이씨는 이선일에게 시집온 후 부모님을 지성으로 모시고 남편에게도 예의를 다하였으며, 자녀 교육에도 엄격하여 주변에서는 칭찬이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이씨는 남편의 상여를 떠나 보낸 후 간수를 마시고 자결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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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거사1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열녀 이완경을 기리는 비. 이완경은 이원린의 딸로, 염재훈의 처이다. 남편을 잘 모시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주위에서 부러워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비록 남편이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의 몸이었지만 부부 간의 금실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난 맹수가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 병든 남편을 덮치려 하자 몸을 던져 맹수를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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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가평(加平). 어버지는 봉산군수를 지낸 이철근이며 어머니는 전주최씨이다. 할아버지는 적개의 공훈으로 책록되어 가평군으로 봉해진 이형손이다. 이장생은 1467년(세조 13)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활쏘기를 좋아해 가평군이 그의 장점을 취하여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1490년에 갑과에 급제하여 용양위후부장을 제수하였다가, 선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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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이정보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에 이름이 높았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져눕자 자신이 대신 병을 앓기를 기도하고 병세를 짐작하기 위해 어머니의 변을 맛보았다. 의식 없는 어머니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수혈하는 등 지극 정성으로 효를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친이 주무시고 있는 집에 불이 났는데, 이정보는 누워 있는 모친이 놀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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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구(子久), 호는 과암(果菴). 이항길은 김장생의 이웃에 살면서 그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제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송시열과 송준길, 성혼 등이 스승을 찾아 공부하러 올 때면 먼저 이항길을 찾아 선생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이항길은 80세의 노친을 효성을 다해 모셨으며, 이러한 이항길의 학행과 행동 범절을 김장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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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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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충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농맹아(聾盲啞). 증조부는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이며, 아버지는 백파도정(白波都正) 이상(李常)이다. 슬하에 4남 3녀를 두었다. 이현동은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왕손의 몸일지라도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강호산인(江湖散人) 김숙자(金叔滋)의 문인으로 그의 아들 김종직(金宗直)과 도의(道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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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이홍묵의 처 전씨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편 이홍묵은 의병에 자원하게 되자 의복에 붉은 색실로 꾀매어 행장을 차려 주었다. 얼마 후 광주(廣州) 험천(險川)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참패했다는 비보를 듣고 부인은 집에서 기르던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다가 의복에 붉은 실로 꿰맨 흔적을 보고 남편임을 확인하고는 시신을 수습하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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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산직1리 장골마을에 있는 조선 중기 이홍묵의 처 전씨의 정려. 전씨는 이홍묵의 부인이다. 병자호란 때 남편이 종군하여 광주 험천에서 전사하자 몸소 격전장에 가서 남편의 시신을 찾아 마을까지 운반해 장례를 치렀다. 남편의 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팔 때 인부들에게 남편의 성격이 광활하였으니 묘를 넓게 파달라고 하고, 하관은 혼자 하겠다며 사람들을 물리친 후 비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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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있는 익안대군 이방의의 초상화. 「익안대군 영정」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인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 ?~1404)를 그린 초상화이다. 현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316번지에 있는 익안대군 영당인 원훈각(元勳閣)에 보관되어 있다. 이방의는 고려 공양왕 때 판밀직사사가 되었고,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익안대군에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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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임리정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원래는 황산정(黃山亭)이라고 하였으나,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의하면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못에 임하는 것같이 하며 엷은 어름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구절을 따라 임리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임리정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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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전의(全義)는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전의면[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통일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익찬 2등 공신 삼중대광태사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공주 출신으로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자 공주에 이르렀을 때 금강이 범람하여 멈추자 도강 방법을 주도한 공으로 도(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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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출신의 충신·효자·열녀 등에게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 충·효·열 삼강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던 조선시대에는 충신·효자·열녀를 찾아내 그 행적을 기록하고 표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사안이었다. 표창의 방법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법적으로 규정되었는데, 예조와 의정부의 심사를 거쳐 국왕의 재가를 받아 시행하는 가장 높은 단계의 표창이 바로 정려(旌閭)였다. 정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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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파평 윤씨 문중에서 운영해 오던 서당. 종학당의 전신은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m 거리에 있는 정수루이다. 정수루는 누각과 서재가 있어 선비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시문을 짓던 장소였다. 정수루 정면 중앙에는 정수루(淨水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좌우로 향원익청(香遠益淸), 오가백록(吾家白鹿)이란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호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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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에 건립된 서원. 논산시에서 익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9.71㎝ 가면 강경읍이 나온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약 0.72㎞ 가다보면 황산리가 나온다. 죽림서원은 황산리에서 북쪽에 솟은 동산을 두고 금강 쪽을 바라보며 자리하고 있다.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세워졌다. 1663년(현종 4)에 중건하였으며 그로부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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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 왕우내마을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지경리 고분군은 지경리 왕우내마을 뒷산 남사면에 위치한다. 현재 이곳은 송림이 우거져 있는 상태이다.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으나, 외견상 고분은 이미 도굴 또는 파괴되어 있으며, 석축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도굴된 1기의 고분을 보면 대형 판석으로 매우 정교하게 묘실을 축조한 단면 육각형의 고임식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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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봉곡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무신. 본관은 삼척(三陟). 호는 추당(湫塘). 아버지는 조선 개국공신 진충귀의 증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연산군 때 임천군수를 역임한 진암수(陳巖壽)이다. 진암수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진극효는 둘째이며, 삼형제 모두 학문에 뛰어났다. 선조 때 진사가 되어 학업에 전념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하고 독실하여 시인 묵객들과 교우하였다.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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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지역의 열녀. 진진 처 담양국씨는 천성이 효성스러워 부모를 극진히 섬겨 어려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으며 16세에 진진(陳璡)에게 출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마을에 당도하자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 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대항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모두 피난을 떠나게 되자 남편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왜적이 점점 가까워 오자 남편에게 꼭 살아서 부모님과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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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중기 진진 처 담양국씨의 정려. 담양국씨는 진진의 부인이다. 임진왜란 일어나자 왜적은 논산의 가야곡까지 몰려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은 앞산에 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왜적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총칼이 없는지라 모두 후퇴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씨도 남편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왜적이 점차 가까워 오자 국씨 부인은 남편에게 꼭 살아서 부모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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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란을 시조로 하고 한여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한씨는 한국의 최고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이다. 본관은 문헌에 청주 외에 평산·한양·안변 등 10여 본이 기록되어 있으며, 모두 청주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씨는 멀리 고조선시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청주한씨세보』에 의하면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후대에 우성(友誠)·우평(友平)·우량(友諒)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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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충곡서원은 원래 백제 장군인 계백과 박팽년(朴彭年),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하위지(河緯地), 유응부(兪應孚) 등 사육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었으나 점차 그 수가 늘어 18위가 배향되어 있다. 8명의 선현을 제향한다 하여 팔현 서원(八賢書院), 육신 서원(六臣書院)이라 불렸던 기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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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인 충헌공 윤전의 재실. 윤전은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610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으며, 1613년(광해군 5) 유생 이위경이 폐모소를 올렸을 때, 상소를 저지시키려다 파면되었다. 이후 1615년 호조좌랑에 이르렀으나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고, 1623년(인조 1) 경기도사로 복직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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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50m 정도 들어가 오른쪽 길로 200m 가면 덕포선생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재실, 파평윤씨 덕포공 재실, 파평윤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파평윤씨 재실과 같은 장소에 있었던 건물로, 1988년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299호로 지정하였으나 덕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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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파평윤씨의 재실. 노성면 병사리 1구 마을회관 건너편 소로로 약 30m 정도 들어가 다시 오른쪽(동쪽) 길로 200m 가면 덕포공 고택과 병사, 파평윤씨 묘역이 나온다. 파평윤씨 재실인 병사는 1574년(선조 7)에 건축되었다고 전한다. 1630년대에 윤순거가 선조 묘소 수호사로 지었던 건물과 파평윤씨 덕포공 윤진의 재실을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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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에 있는 정자로 1633년(현종 4)에 송시열이 건립함. 1663년(현종 4) 송시열이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짓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은 마음에 팔괘정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지는 팔괘정은 죽림서원의 북쪽 언덕에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마치 죽림서원의 양 날개처럼 사우를 위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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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절터. 논산 지역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 인접한 지역으로 이때부터 직접·간접으로 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상 사찰의 창건이 이루어진 때는 고려 전기이다. 논산 지역에 있는 폐사지로는 문화재로 지정된 개태사지 외에도 논산 송불암 사지, 운제사지, 어린사지, 안터사지, 탑안이사지, 봉선암지, 정토사지를 포함하여 약 30여 개가 곳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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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하표정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연산에서 상월로 통하는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1㎞ 정도 가면 사갑들이라는 들판이 나온다. 사갑들 북단에 표정리 하표정마을이 자리한다. 하표정마을은 계룡산지의 남쪽 끝 서사면에 해당된다. 표정리 고인돌군은 하표정마을에 모두 3기가 위치한다. 1기는 나지막한 구릉의 서쪽 말단부에 있는 민묘 옆에 있으며, 2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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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기둥. 표정리 선돌은 논산시 연산면 표정2리 하표정마을 어귀에 있다. 선돌의 남쪽 전방에는 연산천이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으며, 그 주변에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선돌은 방형(方形)의 화강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가 절단되어 결실된 형태이지만, 비교적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 현재 지표상에서 확인되는 규모는 높이 130㎝,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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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 성재동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하도리 성재동 고분군은 하도1리 성재동 북서쪽에 남동-북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해발 50m 내외의 능선 남서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현재는 산림 지역을 밭으로 개간하여 경작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도리 성재동 고분군은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지원으로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논산 지역 문화유적 지표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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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석종리에서 매년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함평이씨 함성군파가 조선 후기 무신 이삼 장군을 모시는 제사. 이삼(1677~1735)의 묘소는 백일헌 영당의 뒤편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50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묘역은 남향으로 묘비·상석·석주·석등이 배치되어 있는데, 석등만 최근의 것이다. 묘비 전면에는 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고, 뒷면은 그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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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리 유동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논산~공주 간 도로를 따라 약 5㎞쯤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항월리에 이르는 소로가 나타나는데, 이 소로변 북쪽에 항월리 유동 고분군이 있다. 항월리 유동 고분군은 백제시대의 돌덧널무덤 계통으로 보인다. 지표면에 유실된 고분 석재는 화강석으로 약간 다듬은 흔적을 보이고 있는데, 규모도 비교적 큰 것들이다. 2008년까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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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3리 대동마을 입구 바위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에 지내는 마을 제사. 항월3리 대동 석불제와 관련해서는 ‘호열자’라고 불렸던 콜레라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온 나라에 콜레라가 번성하여 민심이 흉흉할 시절 이 마을에도 병이 번졌는데, 어느 날 노승이 지나다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바위를 모시면 재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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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중기 현감 이씨의 묘소. 묘역은 쌍분이며 묘비, 상석, 문인석, 묘갈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2기의 묘비에는 각각 ‘현감가평이공지묘(縣監加平李公之墓)’, ‘선인조씨지묘(先人趙氏之墓)’라고 음각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255㎝로 비신의 높이 150㎝, 너비 70㎝, 두께 22㎝이다. 묘갈의 이수는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형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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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항월4리 입구에 있는 조선 말기 열녀 홍순성 처 기계유씨의 정려. 기계유씨는 시남(市南) 유계(兪啓, 1607~1664)의 후손 유치백(兪致白, 1845~?)의 딸이며, 남양(南陽) 홍순성의 부인이다. 천성이 단정하고 정숙하였으며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남편을 극진히 섬겨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출가한 지 10개월도 못 되었을 때 남편이 병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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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논산에서 노론과 소론의 선봉에 섰던 송시열과 윤증의 사상 대립. 남인이었던 백호 윤휴(尹鑴)는 새로운 이념설을 주장하면서 모든 경서의 집주(集註)를 상대적 성리학적 견해로 고치고자 하였다. 윤휴의 주자학에 대한 비판론은 당시 주자학의 적통을 이은 송시열(宋時烈)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문제였다. 이에 따라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배척하였다. 서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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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휴정서원은 기호 사림의 종장인 김장생의 친족과 그의 학통을 받은 문인들만을 제향한 점에서 여타 기호계 서원과는 의미가 다르다. 연산 지역은 호서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인 논산 돈암 서원이 있는 곳이다. 기호학파의 거두 김장생을 제향한 논산 돈암 서원이 존재하고 있는데 다시 그의 친족 문인들로 구성된 휴정서원이 세워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