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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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맘바등이란 바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맘바등이란 군내면 용장리 서편에 있는 흑색의 큰 바위를 말하는데, 옛날 옛적 한 신선이 그 바위 안에 엄청나게 많은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된 옛날, 그 바위에는 도선(道詵)이라는 신선이 살았는데, 그 바위 속에는 큰 창고가 있어서 진물보물(珍物寶物)이 엄청나게 많이 쌓여 있었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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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군내면 속해 있다. 용장리는 법정리이며 동시에 행정리이기도 하다. 용장리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기왕의 용장리에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장리는『호구총수』(1789)의 기록에 의하면 진도군 군내면(郡內面) 27개 마을 중의 하나였다. 이 자료에는 용정리(龍井里)로 마을 명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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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에 관련된 기술 내용은 『지명총람』(진도군)과 용장마을에서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며, 용장마을 이장인 곽재설(남, 64세) 씨와의 직접 면담조사 및 현장조사를 통해 작성되었다. 관청골[골] 삼별초 당시 삼별초군의 관공서가 있었다고 한다. 구서당터[鄕校] 진등 지나서 있는데, 옛날에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고 한다. 노시난골[골] 고려장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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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龍藏里)하면 한자로 용을 품는다 또는 감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용은 예로부터 임금을 상징하는 말이다. 한양도성에서 천리 먼 길 떨어진 이곳이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군지에는 1772년 남양홍씨가 처음 입향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995년(성종 14)에 진도군을 옥주군(沃州郡)으로 개칭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옥주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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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속하는 행정리. 길옆에 논이라는 의미가 한자화하여 도론으로 변한 것이다. 진도 용장성으로 넘어가는 고갯길 바로 밑에 있는 마을로 경주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어, 최초로 경주이씨가 입촌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계안산암질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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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 있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벽파정(碧波亭)이 있었으므로 벽파정 또는 벽정(碧亭), 벽동(碧洞)이라 하였다. 벽파적이 벽파장으로 와전되었으며, 뱀파장, 별파장 등도 모두 벽파정의 와전이다. 벽파는 해변의 벽도를 미화해서 붙인 이름이고, 벽파항이라고도 한다. 1500년경 형성되어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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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벽파마을에서 매년 설날, 정월 대보름, 추석에 당집의 당할아버지께 올리는 마을제사. 벽파리는 본래 전라남도 진도군 고일면 지역으로서, 벽파정이 있어서 벽파정, 또는 벽정이라 불렸다. 그러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연동리, 벽동리와 군일면의 용장리를 병합하여 벽파리가 되면서 고군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의 입향조는 이천서씨이고,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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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민간에서 구비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서사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는 설화는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세분할 수 있다. 설화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오기 때문에 전승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구비전승되어 오는 설화 역시 진도사람들의 경험과 의식이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나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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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돌로 구축한 방어시설의 총칭. 성(城)과 성곽(城郭)은 엄밀하게는 다르다. 성(城)은 내성(內城)만을 의미하고 성곽(城郭)은 내·외성을 통칭한다. 성곽은 거주 주체에 의해 도성(都城)과 읍성(邑城)으로 나누어진다. 지형에 의해서는 평지성(平地城), 평산성(平山城), 산성(山城)으로 나누어진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는 국경성(國境城), 해안성(海岸城), 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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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가는 등성이가 되므로 가는골재에서 마을 이름이 나왔다. 세등리 마을은 참봉공의 증손 곽호례(郭好禮)[1541~1591]가 1560년대에 밀양박씨 박령의 사위가 되어 해남에서 건너와 살면서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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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있는 행정리. 마을의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1574년에 형성된 마을에 대한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검산곶에서 유래한 ‘검사골’이 고유 명칭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예전에 마을 남쪽에 있는 연동저수지에 연꽃이 많아서 연동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1574년에 형성된 것으로 보며, 마을의 입향조는 밀약박씨이다. 본래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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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오하리가 있는 오산리의 오산이라는 말이 오산(烏山)하는데서 동음으로 썼을 것이고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다섯 오자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오하리의 아래 하(下)자는 마을이 커서 오상리와 오하리 둘로 나뉘면서 아랫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1400년쯤에 창녕조씨의 충신이 있었는데, 반정으로 왕이 바뀌면서 새로운 왕을 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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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용장산 밑이 되므로 용장골 또는 용장이라 하였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세등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장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군내면의 경계를 이루는 선황산이 있으며, 남쪽에는 상봉, 일출봉 등이 있다. 농경지의 농업용수로 용장저수지의 물을 이용하고 있다. 군내면의 동부에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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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 용장리는 진도읍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선돌은 모두 3기가 있는데, 선돌①은 마을의 북쪽 입구에 위치한다. 선돌②는 선돌①로부터 남동쪽으로 2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선돌③은 선돌②로부터 남서족으로 100m 정도 떨어진 마을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용장리 선돌①의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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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용장마을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용장리는 진도읍의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유물산포지는 용장마을 입구 주변에 위치하며, 마을주민들로부터 ‘가전들’로 불리고 있다. 서쪽으로 지방도 801호선이 지나가고 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경작 중에 이곳에서 많은 양의 기와편들과 자기편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현재 밭과 논 주변에도 상당수의 기와편과 자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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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 용장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801번 지방도이다. 18번 국도와 연결되어 용장산성 내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 안길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힘들 정도로 좁다. 최근 마을 안길 흙담을 철거하고, 블록 담을 개축하고 있다. ◦ 교량 : 교량으로는 용장교(龍藏橋)가 있다. 용장교는 도로 벽파선(碧波線)에 놓여 있다. 1925년에 혼응토조(混凝土造)로 도로 확장과 동시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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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장리의 운영 조직 -그림- 용장리 운영의 조직 구조 -그림-과 같이, 이장은 개발위원회와 경로회, 상수도를 직접 관리하고, 이장의 지휘를 받아 (새마을)지도자가 부녀회와 상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용장리는 1991년 1월 1일에 8장 28조로 제정된 ‘마을 규약’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2) 마을 총회(동계) 동계는 매년 12월 25~30일에 개최된다. 동계에서는 1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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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윷놀이다. 농한기에 시간이 나면 모여서 하는 편인데, 주로 60대와 70대가 참여한다. 게이트볼을 활성화하기 위해 구장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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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지침 : 용장리는 마을 주민의 삶의 지침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여 마을 회관에 게재하였다. ①경노·효친을 우선합니다. ②서로 사랑하며 친절합니다. ③모범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④마을일에 헌신 참여합니다. ◦ 상도계(喪徒契) : 용장리에는 6개의 상도계(喪徒契)가 반별 등을 기준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마을 구성원이 점차 감소하고, 각 상도계들이 각자 운영되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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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용장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좌익에 의한 학살과 우익에 의한 학살이 모두 발생했는데, 사망자가 백 수십 명에 달했다. 좌익에 의해 희생된 마을 사람들 83명을 추모하는 ‘오호순국지혼(嗚呼殉國之魂)’비가 1951년 10월 마을 입구에 건립되었다. 우익에 의해 희생된 숫자는 30~40명 정도 된다. 이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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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당시의 동안(洞案)으로 보면, 박씨 36가구, 곽씨 20가구, 홍씨 16가구, 김씨 10가구, 조씨 6가구, 양씨 6가구, 하씨 5가구, 이씨 2가구 등 총 101가구였다. 2005년 12월 현재 행정상의 기준인 75세대를 대상으로 성별 세대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많은 성씨 순으로 정리하면, 박씨 29세대, 곽씨 21세대, 조씨 8세대, 김씨 6세대, 고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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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수와 인구수는 표1 과 같이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꾸준히 감소했다. 1968년에 134가구였으나, 37년 만에 54가구가 감소하여 2005년 현재 80가구(주민등록상)가 거주하고 있다. 최근 10년간은 감소 추이가 둔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줄고 있다. 가구수 감소와 비례하여 마을 인구도 대폭 감소하여 1968년에 688명이었으나, 522명이 감소하여 2005년 현재 16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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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밀양박씨(密陽 朴氏): 곽윤배(郭允培)[본관 현풍]의 처로 청상과부가 되었으나, 수절하면서 자식들을 잘 키워 집안을 일으켰다. 열녀로 칭송되어 동리에 비가 세워졌다. 군내면 세등치에 있는 삼강비에도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조극현(曺極鉉) : 본관은 창령(昌寧)이고, 호는 해농(海農)이다. 1936년 2월 20일 용장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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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리 출신들로 타 지역 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향우회의 성격을 갖는 모임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가입되어 있다. 청년들로 구성된 모임과 장년들로 구성된 모임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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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군면과 군내의 인접 마을에서 또는 마을 내에서 혼인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반촌이었던 용장리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촌과의 혼인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혼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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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곧바로 새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인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둘러싼 용장산성(龍藏山城)의 안쪽, 즉 현재의 용장리 일원이 그곳이다. 여기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주변의 고인돌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청동기시대 즈음에 주민이 거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후 삼국을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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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법정리인 세등리에 속한 행정리. 장언리 마을은 밀양박씨와 김해김씨가 둔전 간척답 경작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1952년에 김대영이 둔전 간척사업장 인부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본래 진도군 군일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이면의 유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등리라 하여 군내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는 선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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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에 있는 행정리. 지수리의 확실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한자어로 진도의 명주인 홍주를 만드는 지초 지(芝)와 물 수(水)를 의미한다. 본래 지수리가 속한 오산리는 진도군 고일면의 지역으로서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지수리, 오상리, 오하리의 각 일부와 고이면의 고성리, 황조리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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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 있는 행정리. 처음 입향한 곽평산의 이름을 따서 평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첨찰산의 정기를 받은 출석봉 아래에서 살던 현풍곽씨의 평산이라는 사람이 처음에 주거를 정했고 그 뒤 최씨, 이씨, 한씨, 조씨 등 5성이 모여서 촌락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고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론리와 평산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도평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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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별로 없는 넓은 땅. 진도는 대체로 산지나 구릉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산지의 고도는 200~400m 정도로 낮은 편이다. 따라서 산지에 의한 대규모의 하천은 발달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지방 2급 하천들이다. 이들 곡저를 따라서 소규모의 범람원과 충적지가 나타나고 이를 기반으로 마을이 규모에 맞게 들어서 있다. 평탄한 평지이면서 관개가 가능한 곳은 일찍부터 논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