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577
한자 信川康氏
영어음역 Sincheon Kangssi
영어의미역 Sincheon Ka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집필자 김동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시기/연도 1398년(태조 7)연표보기
성씨시조 강호경(康虎景)
입향시조 강영(康永)

[정의]

강호경을 시조로 하고 강영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연원]

시조 강호경(康虎景)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外) 6대조이고, 강호경(康虎景)의 4세손 강보육(康寶育)은 왕건의 외고조부로서 왕덕대왕(王德大王)으로 추존된 인물이다. 강씨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중시조(中始祖: 1세)는 충렬공(忠烈公) 강지연(康之淵)으로 강지연(康之淵)은 몽골 침입 때 고려 고종(高宗)을 따라간 호종공신(扈從功臣)이며 신성부원군(信城府院君)[신성은 신천의 옛 이름]에 봉해짐으로써 이때부터 신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오늘날 모든 강씨는 강지연의 후손으로, 곡산강씨의 중조(中祖) 상산백(象山伯) 강서(康庶)는 6세이며, 재령강씨의 중조 안릉군(安陵君) 강득룡(康得龍)은 8세로서 조선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는 강득룡의 친누이동생이다.

강득룡은 고려 공민왕 때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결심, 관악산에 들어가 암자에 살면서 매일같이 산에 올라 개성(開城)을 향해 통곡하였는데, 이곳이 연주대(戀主臺)와 연주암으로 전해지고 있다. 강득룡과 형제인 입도시조 강영(康永)은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 자헌대부에 오르고 행전라감사를 역임하였다.

[입향경위]

제주도에 신천강씨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초이다. 1398년(태조 7)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 때 왕위 계승 문제로 신덕왕후 소생 이방번·이방석이 화를 입자 당시 전라감사로 있던 강영(康永)이 위해를 모면키 위해 제주도로 피신하였다.

입도 후에는 조천읍 함덕리에 정착하여 후진 교육에 기여하다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효제와 예의를 가르쳤으며 자신의 과거를 원한으로 삼지 않고 관직에 나아가기를 포기하여 세인이 이르기를 학덕 높은 충신이라 말하고 강영(康永)의 높은 충절을 칭송하였다.

[현황]

1960년도 인구 조사 결과를 보면 4,000여 가구가 제주도에 살고 있었다.

[관련유적]

제주입도조 강영(康永)의 묘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 있으며, 조천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