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1468 |
---|---|
한자 | 居昌愼氏 |
영어음역 | Geochang Shinssi |
영어의미역 | Geochang Sh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명려를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연원]
거창신씨 시조 공헌공(恭憲公) 신수(愼修)는 송나라 개봉부(開封府) 사람으로 고려 문종 때 귀화했는데 학식이 깊고 의술에 능했다. 1075년 시어사(侍御史)가 되고 숙종조에 이르러 수사공(守司空) 우복야(右僕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신수 그의 아들 신안지(愼安之)도 문종 때 지수주사(知水州事)를 지냈으며 의약에도 조예가 깊었고 특히 한어(漢語)에 능통하여 중국에 보내는 공문서를 많이 썼다. 고종 때 대장군에 올랐던 신집평(愼執平)은 시조의 8세손이다.
50세손에 이르러, 태종 때 문과에 올라 전라도관찰사가 된 신기(愼幾)를 파조로 하는 완백파(完伯派), 신기(愼幾)의 아우 신언(愼言)을 파조로 하는 서령공파(署令公派), 1429년(세종 11) 문과에 올라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신전(愼詮)을 파조로 하는 해백파(海伯派) 등 세 파로 나뉘었다.
[입향경위]
신명려(愼明麗)는 시조의 20세손으로 1628년(인조 6)에 정묘호란의 혼란을 피해 제주목 화북포에 입도 낙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황]
해백파 파조 신전의 아들 신승선(愼承善)[1436~1502]은 단종 2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돈녕부승이 되고, 이어 한성부우윤·병조참지로 문과 중시에 장원하였으며, 이 해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3등으로 급제했다.
이듬해 공조와 이조참판을 지내고 익대공신에 올랐으며 성종 2년 좌리공신에 올라 공조판서가 되었다. 이어 병조판서·좌참찬·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영춘추관사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고 거창부원군에 봉해졌다.
신승선(愼承善)[1436~1502]은 영의정까지 이르렀으나 생활이 검소하고 성품이 청렴하였기로 두 차례 공신에 책록되면서 임금이 내려준 논밭만도 100결이나 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파조의 증손인 관천자(觀泉子) 신희복(愼希復)은 명종 8년 별시 문과에 올라 홍문관 직제학·황해도관찰사·경기도관찰사·개성부유수를 거쳐 우참찬(右參贊)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