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1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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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浮海文集 |
영어음역 | Buhae Munjip |
영어의미역 | Collected Works of Buhae |
이칭/별칭 | 부해만고,부해유고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상조 |
[정의]
2002년에 간행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학자 안병택의 유고 문집.
[개설]
안병택(安秉宅)[1861~1936]의 호는 부해(浮海)인데, 훗날 집안의 항렬에 따라 택승(宅承)으로 개명을 하였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태어나,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 전라남도 장성군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생전에 써두었던 행장과 시문·비문·편지글 등이 『부해만고(浮海漫稿)』, 또는 『부해유고(浮海遺稿)』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람에 의해 필사되었는데, 아마도 문인들이 저술 연대에 따라 정리한 것인 듯하다.
[편찬/발간경위]
『부해문집(浮海文集)』 2책은 2002년 2월에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에서 『탐라문화총서』17로 한학자 오문복의 「부해 안병택 약전(浮海安秉宅略傳)」을 머리글로 수록하여 간행하였다. 「부해 안병택 약전」에 따르면 『부해유고』는 원래 『부해만고』라는 이름으로 안병택의 문인들이 필사한 글로서, 문집과 달리 분야별로 묶어진 게 아니라 지은 차례대로 묶은 것을 말한다. 손자인 안인훈이 간수하고 있다가 노강 박래호가 주선하여 세상에 알렸다고 한다.
『부해문집』이 권차의 구별없이 간행된 것으로 미루어, 안인훈이 보관하고 있던 글들을 편찬 없이 묶은 것으로 보인다. 『부해유고』는 원래 13책이었으나 그 중 3책은 일실되었다고 한다.
[구성/내용]
상권에는 「부해 안병택 약전」에 이어서 2수의 부(賦)에 이어 시 90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뒤로 제문(기우제문 포함), 상량문, 기우축문, 기, 설, 서(序), 행장 순서로 실려 있다. 하권에는 전·비문·서(書)·제(題)·묘갈명·묘표·묘지명이 섞여 나오고, 마지막으로 여러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전체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여 나온다.
안병택은 생선에 자신을 ‘추생(鯫生)’이라고 겸양하였는데, 이 말은 보잘것없다는 의미말고도 섬 출신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제주를 떠난 뒤에도 제주 출신의 제자를 거두고 제주 출신 문인과 교유를 하여 많은 글을 남겼다. 그 중에서 「원당산기우축문(元堂山祈雨祝文)」, 「해은유고서(海隱遺稿序)」, 「귤암행장(橘巖行狀)」, 「이락당갈명(二樂堂碣銘)」 등은 유고가 알려지기 전부터 제주에 널리 알려졌다.
안병택은 살아 있을 때부터 주위에서 문장과 행실이 거벽(巨擘)이라고 일컬어졌다. 이에 대하여 그는 “어려서 스승으로부터 교도를 받아 경사자전을 대충 읽었고, 성명이나 겨우 쓸 줄 알아 촌학조대(村學措大)라고 한다면 사양하지 않겠다”고 겸양하였다(「답금경중(答金暻中)」).
“공자의 책을 읽고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천하가 깨끗해져서 공자의 도가 행해지기를 기대하는” 전형적인 선비였으며(「답량회을(答梁會乙)」), 국운이 이미 다한 것을 인식하였으며(「상송사선생서(上松沙先生書)」), 그것이 일본에 의해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답김희철(答金熙喆)」).
그러나 “선비가 중화에서 태어나는 것이 귀중하고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은 그 다음”이라고 하면서 “중화가 귀한 소이는 도덕과 문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화정후기(華亭後記)」).
[의의와 평가]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제주 지식인들의 사고와 동태를 보여 주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