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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1104
영어음역 sanyang
영어의미역 hunting
이칭/별칭 수렵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집필자 고광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총이나 활 또는 길들인 매나 올가미 따위로 산이나 들의 짐승을 잡는 일.

[개설]

제주민들은 정착 생활을 하기 전부터 그리고 농경 생활을 하면서도 의식(衣食) 해결을 위해 수렵을 생활 수단으로 삼았다. 이는 토양이 척박해 농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첨두기(찌르개)와 석촉 등은 신석기시대부터 창과 화살을 이용해 수렵 생활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제주에서는 수렵 활동은 식량 확보를 위한 생존 수단이었다.

[연원 및 변천]

고문헌을 토대로 볼 때 제주의 사냥용 야생 동물은 멧돼지, 고라니, 사슴, 노루, 오소리, 꿩, 참새 등이었다. 이런 야생 동물들은 초자원이 풍부하고 맹수가 없었기 때문에 번식이 잘 되었던 것이다.

제주목사 이건(李健)[1614~1662]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는 “산에는 곰, 호랑이, 승냥이, 이리 등 악수가 없으므로 우마가 출장하며 미록도 이 까닭에 번식하고 있다. 미록의 떼가 어디에나 있으니 사람들이 그것을 잡아다가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어 제주민들은 사냥을 고기 확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민가뿐만 아니라 관에서도 진상을 목적으로 군민을 대량 동원하여 사냥에 나섰다. 김상헌(金尙憲)[1570~1652]의 『남사록(南槎錄)』에는 “서울 무역의 폐이니 본주는 해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한 고을 군인과 장정을 다 동원하여 짐승을 포위하여 잡는데, 잡힌 것은 노루와 사슴이 가장 많다. 그 가죽을 다루어 진상 공물에 충용하는 외에 따로 여러 가지 응구물을 만들고 또 그 사유고가 뼈를 묶은 것을 낭하에 달아두면 다음해 여름을 지난 뒤에는 다만 백골만 있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이형상(李衡祥)[1653~1733]의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교래대렵(橋來大獵)」에는 당시 진상을 위한 대대적인 사냥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제주의 전통적인 수렵에는 수렵 대상물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었다.

[종류]

1. 총

지금에 와서 제주 사람들이 사용했던 그 총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러나 촌로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어림셈해보면, 국어사전에서 간신히 볼 수 있는 화승인 불로 터지게 하여 쏘는 구식총인 화승총과 비슷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화승을 만드는 재료나 그 명칭이 전혀 다른 점으로 봐서 반드시 화승총과 비슷한 것만도 아니었던 듯싶다.

2. 코

줄로 고를 내어 짐승을 잡는 장치인 올가미를 두고 제주 사람들은 ‘코’라고 하였다. 제주도 코 사냥의 대상물은 노루·꿩 등이었는데, 노루를 잡기 위한 올가미를 ‘노리코’, 꿩을 잡는 올가미를 ‘꿩코’라 하였다.

올가미에 걸리게 해서 잡는 사냥 법으로 꿩이나 노루의 목이 이에 걸려들어 빠져나오려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코는 점점 옥죄어져 잡히는 것이다. 코 사냥은 노루와 꿩의 움직임이 비교적 활발한 계절인 겨울 동안에 이루어졌다.

3. 창

오소리는 동지와 입춘 사이에 수컷 한 마리와 여러 개의 암컷이 굴속으로 들어가 여러 날 동안 흘레붙어 있는 수가 많았다. 바로 이때 창으로 찔러 잡는 수가 많았다.

4. 몰이

여럿이 일정한 도구도 없이 개와 함께 몰거나 날도록 하여 잡는 사냥을 ‘몰이사냥’이라 할 만한데, 이렇게 잡는 대상물은 꿩이었다. 꿩은 음력 6~7월에 털갈이할 때이면서 더운 계절이라 두 번 만 날게 하면 혀를 내어 가로 물 정도로 힘을 쓰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때 몰이사냥으로 꿩을 잡는 수가 많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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