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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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山里- |
영어음역 | Gosan-ri Noranggul |
영어의미역 | Kiln Site in Gosan-ri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나영 |
성격 | 가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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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950년대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있는 일상 용구를 만들던 가마.
[건립경위]
1950년대에는 신평리에서 작업하던 ‘오쟁이의 허벅’, ‘조쟁이의 항아리’ 등으로 불리던 유명한 옹기대장들이 양질의 점토가 풍부하고 연료로 쓸 소나무가 많았던 고산 지역으로 옮겨와 가마를 열면서 옹기 생산이 성황을 이루던 시기였다.
토질이 진흙밭이라 농사가 잘 되지 않았던 이 지역 주민들도 가마 일에 필요한 인력을 충당해 주었고, 가마에서 나오는 항아리들을 각 마을이나 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고산리 노랑굴도 옹기 생산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축조된 가마로서, 물레대장이었던 고씨가 개인적으로 축조하였고 그 후손들이 아직도 사유지로 소유하고 있다.
[위치]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의 속칭 ‘뱅딧동산’, 또는 ‘신물동산’이라 부르는 동산의 능선을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위치해 있다. 가마 뒤쪽(남쪽)으로는 1980년대에 벽돌을 생산하던 제주 벽돌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벽돌 공장 옆으로 돌아 내려가면 가마가 자연 경사를 이용하여 북쪽은 낮고 남쪽은 높은 상태로 길게 축조되어 있다. 남서쪽으로는 3㎞쯤 떨어진 곳에 신도리 노랑굴이 있다. 북쪽으로는 바다가 인접해 있다.
[형태]
굴의 입구는 넝쿨나무들이 우거져 가까이 진입하기가 꽤 어려우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구의 현무암 세 개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부장쟁이 터도 남아 있을 뿐 아니라 가마의 외부도 뒤가 끊기긴 하였으나 매우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남아 있는 가마 외부의 길이는 140㎝이다.
현무암 두 개를 세우고 하나를 얹어 만든 아궁이는 넓이가 57㎝, 높이가 40㎝로서 약간 좁고 낮으며, 부장도 아궁이 쪽은 좁고 소성실에 가까워질수록 넓어지는 유선형을 이루고 있다.
부장의 중앙 바닥은 약간 안이 파인 듯하며, 소성실로 이어지는 바닥 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부장은 높이가 150㎝이다. 불벽은 흔적만 남아 있고 소성실의 뒷부분도 유실되었는데, 남아 있는 소성실의 높이는 160㎝, 길이는 800㎝이다.
가마 출입구는 왼쪽에 있어 작업장에서 드나들기 쉽게 만들어진 듯하다. 소성실 내벽은 진흙이 잘 발라져 있으나 파손된 부위를 살펴보면 현무암과 잡석 사이의 흙 속에 모래가 섞여 있다. 천장과 가마 벽이 이어지는 부분은 급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바닥은 고르지 못하고 경사도는 약 18도이다.
[현황]
부장쟁이는 유실되었으나 그 흔적이 남아 있고 화구의 현무암도 그대로 남아 있으나 뒷부분은 많이 파손된 상태이다. 하지만 화구 및 가마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정도로 잘 보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