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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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喆宙 |
영어음역 | Sin Cheolju Gunsu Sunjik |
영어의미역 | County Mayor Sin Cheol-ju's Death in Office |
이칭/별칭 | 걸어 다니는 586컴퓨터,작은 거인,마당발,문화군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성격 | 군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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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구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 |
성별 | 남 |
생년 | 1938년 8월 4일 |
몰년 | 2006년 6월 22일 |
대표경력 | 구 북제주군 군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출신으로 민선 1~3기를 역임했던 구 북제주군 군수.
[개설]
신철주는 유년 시절부터 한학과 유학에 밝았던 선친으로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있는 법이다. 그러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자라왔다.
신철주는 공사 생활에 있어 청신근(淸愼勤)의 생활 신조와 수법(守法)·수신(守信)·수비(守秘)·수시(守時)·수분(守分)의 5대 행정 철학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항상 공직 입문 초심의 마음으로 행동에 임했으며, 일에 대한 욕심은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평을 받으며 ‘걸어 다니는 586컴퓨터, 작은 거인’ 등으로 불렸다.
[활동사항]
신철주는 1938년 8월 4일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에서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나 여느 가정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보릿고개를 겪으며 소와 말을 키우고 꼴을 베고 밭일도 하며 한국전쟁 중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고등학교를 읍 소재지가 있는 한림읍까지 통학하면서 한림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인 귀덕리에서 이서기 생활을 거쳐 한림읍사무소에서 임시 서기를 하다 1964년 현재 9급에 해당하는 5급 을류 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신철주는 북제주군 행정계장, 제주도 세정과장, 지방과장, 제주시 기획실장을 거쳐 1989년부터 1년 8개월간 북제주군 부군수를 역임했다. 이후 제주도 식산국장·지역경제국장·내무국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후 당시 임명직인 북제주군수를 지내고 1995년에 실시된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제1기 민선 군수로 당선된 이후 민선 2·3기 선거에서도 내리 당선되었다. 신철주 군수는 지방의 세계화 시대를 맞아 민선 1기와 2기에는 군정 목표를 ‘최고와 1등 북제주군 건설’을 기치로 무한 경쟁 시대에 지역 경쟁력 강화와 행정의 경영화를 도모하였다.
민선 3기에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분권화라는 시대 환경 흐름 속에서 군정 목표를 ‘세계로 미래로 도약하는 북제주군’으로 삼아 ‘1차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세계적인 관광인프라 구축’, ‘전국 최고의 청정 환경 보전’ 등 북제주군의 독특한 자원을 새롭게 개척하고 차별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신철주 군수는 장애인 복지 증진, 스승 공경, 노인 존경, 여성의 권익 신장 등 4대 복지 시책을 복지 행정의 근간으로 삼아 전국 최초로 ‘노인 존경 군’을 선포했고, 장애인 이동 목욕 차량을 특수 제작해 도내 최초로 운영하는 등 소외 계층을 위해 다양한 시책을 전개해 왔다.
1995년 중국 라이저우시에 이어 1996년 미국 샌타로사시, 1997년 일본 산다시와 국제 자매결연을 성사시켜 문화 예술과 경제 교류를 통해 우호를 증진시켜 나갔다.
신철주 군수는 민선 재임 10년 동안 동·서간 지역 균형 개발을 목적으로 1읍면 1체육관·1도서관 사업을 완료했다.
또한 중앙 정부로부터 애월읍 하귀1지구 농업진흥지역 해제를 이끌어 냄으로써 지역 발전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했으며, 도서 지역인 추자와 우도 지역 담수화 시설 사업을 추진해 만성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였다.
신철주 군수는 문화 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항몽·항일 정신을 축으로 해 대대적인 항몽·항일 정신 선양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제주돌문화공원 조성사업은 신철주 군수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왔던 사업이다.
1999년부터 2020년까지 100만 평의 군유지에 1,852억 원을 투자하는 장기 프로젝트 사업으로 추진 중인 제주돌문화공원 조성사업은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2006년 6월 3일 개원했다.
2003년 조천 독립만세 운동의 전원지인 조천만세동산에 86억 원을 투자해 성역화 사업을 완료한 데 이어 국내 여성 항일 운동 중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평가받는 제주 해녀항쟁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제주해녀항일기념운동공원 조성사업과 제주해녀박물관 사업도 124억 원을 투자해 완료했다.
또 겨울철 관광 비수기 제주를 대표하는 유일한 축제인 정월대보름 들불축제를 세계인과 함께하는 지구촌 전통 문화관광 축제로 발전시키고, 제주 문화예술의 1번지이자 종합 문화예술인들의 마을로 육성하기 위한 저지예술인마을 조성사업도 추진함으로써 ‘문화군’의 위상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신철주 군수는 ‘마당발’이란 애칭처럼 대 중앙 절충의 1인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여 북제주군의 예산 확보에서, 1995년 1,100억 원 규모이던 예산을 민선 2기인 2001년에 2,000억 원, 민선 3기인 2003년에 3,000억 원 시대를 열어 나갔다. 특히 1998년부터 8년 연속 전국 군 단위에서 최고의 재정 규모를 자랑하는 자치단체로 만들었다.
북제주군 군수로 재직 중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신철주 군수는 2006년 6월 11일 새벽 5시경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의식을 잃어 한라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그러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2006년 6월 22일 향년 67세로 타계했다.
신철주 군수의 장례는 북제주군장으로 치러졌으며, 빈소는 북제주군청 3층 회의실에 마련되었다. 유족으로는 부매자 여사(64)와 1남 4녀를 두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3월 28일 임명직 북제주군 군수로 명예 퇴임하기까지 30년 6개월과 민선 1~3기 북제주군 군수로 당선되어 재직해 온 10년 동안 지역 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주요 상훈으로 녹조근정훈장(1979년)과 삼성효행대상 특별상(1999년)을 수상했으며, 정부는 신철주 군수의 공적을 기려 2006년 6월 23일 홍조근정훈장을 추서하는 한편 복무와 관련해 과로로 순직한 국가 유공자로 9월 1일 순직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