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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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網魚技術 |
영어음역 | mangeo gisul |
영어의미역 | netting skills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서 바닷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사용하는 기술.
[개설]
1653년(효종 4)에 이원진은 『탐라지』에서 “제주도의 산과 바다는 험악하여 그물을 쓸 수 없다. 고기는 낚고, 들짐승은 쏘아 잡는다”라고 말했다. 이형상도 1702년(숙종 28)에 쓴『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제주도는 그물이 없는 섬이라고 했으나 육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리 그물·상어 그물·머르칠 그물 등의 망어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망어구의 종류]
1. 머르칠 그물
크고 작은 돌멩이가 수북하게 쌓인 모양을 ‘머흘’, 또는 ‘머들’이라고 한다. ‘머르칠 그물’은 돌멩이를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치는 그물이라는 말이다. 북제주군 구좌읍 동김녕리에서는 이런 그물을 두고 ‘도르방 그물’, 한동리에서는 ‘머르칠 그물’이라고 한다.
그물은 현존하지 않지만 1980년대까지 북제주군 구좌읍 한동리 갯가에서 가끔 ‘머르칠 그물’로 고기를 잡아온 고원길(남, 1933년생)은 구물의 구조와 어법을 증언했다.
‘머르칠 그물’의 규모는 70m 폭에 다섯 발 길이이다. 억새꽃 껍질로 꼬아 만든 윗줄(‘웃베릿줄’이라고 함)에 머귀나무로 만든 부표인 버국이 띄엄띄엄 매달려 있고, 밑줄(‘알베릿줄’이라고 함)에는 봉돌이 달려 있다. 그물코는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이 들락거릴 정도이다. 이런 모양의 그물 모양을 두고 사결이지라고 한다.
여름 안팎으로 썰물 때 돌멩이가 수북한 갯가에서 그물을 빙 두를 만큼 돌을 치운 다음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쪽에 그물을 친다. 그 후에 그물 안쪽에 있는 돌을 치워나가고, 힘이 부치는 커다란 돌멩이는 놓아둔다. 그물 속에 갇힌 고기들은 큰 돌멩이 밑으로 숨으려 애쓴다.
큰 돌멩이 밑으로 ‘궷낭’이라고 하는 아카시아 나무 막대를 질러 움직이면 그 밑에 숨어 있던 고기는 밖으로 내빼려다 그물에 걸린다. 이런 그물로 잡는 물고기는 우럭·볼락·장어 등이다. 우락과 볼락은 그물에 잘 걸려들지만 장어는 그렇지 않다. 그물 안에 갇힌 장어는 작살로 찔러 잡는다.
‘머르칠 그물’은 바로 ‘산험해악’한 바다밭 조건을 역이용하여 만든 것이다.
2. 자리 그물
자리는 아열대성 물고기이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와 중남부 지방,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거문도와 독도에서 자란다. 제주도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리를 좋아하여 어획 대상으로 삼아왔다.
제주 사람들은 자리를 가지고 젓, 물회, 강회를 만들어 먹는다.『한국수산지』에 따르면 1908년에 제주도에는 282개의 자리 그물이 있었다고 한다.
3. 방진 그물
『미개의 보고 제주도』를 살펴보면 제주도 방진 그물의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다. 제주도민들은 연안에 석재를 축조하고 만조에 들어온 멸치를 밤에 횃불을 밝혀 ‘족바지’로 건져 올리며 잡았다.
그러다 내지인이 들어와서 마른 멸치를 사들이자 차츰 규모가 큰 어구를 사용하게 되었다. 멸치 잡이는 상당히 발달하여 제주인들이 어업의 으뜸으로 삼게 되었다. 1907년경부터 5~6년 사이에 연안 곳곳에 내선인이 멸치 착유 공장을 건설하게 됨에 따라 대지 예망, 방진망, 선진망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
자본가는 조선인 어업자에게 자금을 빌려주고 고기를 잡게 한 뒤 어획물을 대신 취득, 이것을 착유 비료로 제조해서 내지로 이송했다. 추자도민들은 젓갈류를 많이 제조해서 육지 방면으로 다량 판매하였다. 유명한 어장은 곽지·함덕·김녕·월정이다.
방진 그물의 경우 12대의 그물이 필요하다. 1대당 그물의 길이는 12발이다. 그 위쪽에는 삼나무나 구상나무로 만든 부표가 30㎝ 간격으로 일정하게 매달려 있다. 그물 아래쪽에는 그물이 물속으로 쉽게 가라앉게 하기 위하여 불돌을 1m 내외의 간격으로 달아매었다.
그물의 폭은 5m 내외이고, 12떼의 그물은 말꼬리 털로 꼰 줄로 단단하게 묶는다. 이를 ‘연폭’이라고 한다.
방진 그물은 방진망이라 하기도 한다. 단지 조수의 힘을 이용, 멸치 떼를 담 안에 가둬놓고 잡는 방식으로 진보적인 어로 기술이다. 이 작업을 하려면 어로 공동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1) 어로 작업을 위한 조직
방진 그물로 멸치를 잡으려면 대개 30여 명이 한 조를 이루어야 어로 작업이 가능하다. 제주도 내에서 방진 그물이 가장 성했던 월정마을의 경우 여섯 개의 조직이 있었다.
이 조직을 보통 ‘그물접’이라고 하고, 각각의 ‘그물접’마다 모두 이름이 있다. 큰그물접’, 신세그물접, 베롱그물접, 송포그물접, 섯동네그물접, 구세그물접 등이 그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여섯 개 그물접 중 어느 한 조직에 참여하여 계원이 된다.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멸치 잡이에 참여하고 이익금도 공평하게 분배한다.
‘그물접’마다 여러 계원들이 모여 선출한 ‘그물접’의 대표로 ‘망장’ 또는 ‘계장’이 있다. 또 으뜸 1명, 공원 1명과 소임 2명이 있다. 공원은 으뜸을 보좌한다. 소임은 멸치 잡이 때는 물론, 계원들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할 일이 있을 때 소집도 하고 작업도 지휘한다. 그래서 일반 계원들보다 두 배의 이익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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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월정리 ‘그물접’ 과 어장
이들 여섯 ‘그물접’은 별개 조직이면서도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출어 순번에 따라 일정한 어장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장마다 이름이 있다.
이들 여러 ‘그물접’에서 한꺼번에 출어하면 멸치들이 먼 바다밭으로 달아나 버리거나 혼잡을 가져올 수도 있다. 때문에 어장이 다르다 하더라도 윤번을 정해야 하는 것이다.
여섯 개 ‘그물접’ 으뜸들은 해마다 음력 4월 초하루에 모여 출어 순번을 정한다. 한번 정해지면 날씨 관계로 작업을 못하게 되는 일이 생겨도 순번에 따라 교체된다. 마을 어장에 멸치들이 몰려온 날 ‘선진망’으로 제일 먼저 출어했던 ‘그물접’은 다음에는 맨 나중에 출어해야 하는 비상 조치망이 된다.
정해진 어장을 이탈해서도 안 된다. ‘선진망’에서 멸치들을 가뒀는데도 거기에서 빠져나온 멸치들은 제2어장인 ‘장엣통망’에서만 그물을 쳐 가둘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2) 어장 확인
멸치들이 해당 어장에 몰려왔을 때 방진 그물을 쳐서 가둬두기 전에 먼저 확인부터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두 척의 거룻배가 바다로 나간다. 이 배를 ‘당선’ 또는 ‘멜당선’이라고 한다.
두 척의 배에는 각기 2~3명이 탄다. 이들은 멸치 어장에 대한 식견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몰려든 멸치의 양, 그리고 그 날의 간만의 차도 고려하면서, 그물을 드리울 위치와 방향 등 작업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일을 진두 지휘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계원들은 ‘당선’에서 내려지는 명령대로 움직인다. 출어가 가능하면 ‘당선’ 한 척은 재빨리 뭍으로 와 출동 대기 중인 계원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한 척은 그 위치에 남아서 멸치들의 행방을 주시한다.
3) 방진 그물
두 척의 ‘망선’에 그물을 나눠 싣고 출어한다. 망선에는 윈치와 같은 구조의 마개를 돌려가며 그물을 끄는 기구가 장치되어 있다. 배마다 12발 길이의 그물 6때를 나눠 싣는다.
방진하기 위한 그물은 모두 12떼인데, 총 길이는 144발 정도다. 5m 폭의 그물 위쪽에는 부표가 30㎝ 간격으로 일정하게 매달려 있고, 그물 아래쪽에는 불돌이라는 돌멩이가 달려 있다.
4) 닷배
다섯 척이 필요하다. 양쪽으로 그물을 드리워 멸치들을 포위했다가 일정한 위치에 가두게 될 때 띄엄띄엄 부표 기능을 하게 되는 배다. 이들 닷배에는 두 명 내외의 계원들이 승선해 있다.
5) 그물 드리우고 당기기
‘그물접’마다 해당된 어구 구역, 곧 해당 어장 안에 들어온 멸치를 포위하고 다시 목적지까지 몰아가야 한다. 밀물 따라 어장 안으로 몰려든 고기들이 다시 썰물 따라 깊은 바다로 도망가려 하기 때문이다.
빠져나가려는 순간을 잘 포착해 도망가기 직전에 그물을 드리워야 어장 안으로 몰려온 고기들을 최대한으로 포위할 수 있다. 양 진영에서는 해당 진영의 당선에서 내리는 명령에 따라 한쪽으로 6떼의 그물을 이어 묶어가며 드리워나간다.
3떼의 그물을 드리웠을 즈음에 양 진영에 두 척씩 나눠진 ‘닷배’ 중 한 척은 그물 한가운데를 잡아준다. 그물이 휘말리거나 물속 암초에 얽힐 우려도 있으므로 하나의 부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나머지 한 척은 망선 조금 앞으로 항진하다가 그물이 모두 물속으로 드리워지고 나서 마개를 이용해 그물을 당길 때를 대비하여 닻을 고정시켜 줄 준비를 서둘러서 해야 한다.
이렇게 그물을 드리우고 나서 처음으로 ‘망선’에서 그물을 마음껏 당길 수 있게 적절히 닻을 옮겨주는 ‘닷배’를 ‘선말잽이’라 하고, 닻이 고정된 위치까지 그물을 당겨 놓고 다시 그물을 당기기 위하여 재차 닻을 옮겨놓는 배를 ‘훗말잽이’라고 한다.
우산처럼 그물을 쳐놓고 다시 그것을 일정한 위치까지 끌어당기는 동안이라도 늘 고기들의 양과 간만의 차, 그리고 그물을 당기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모래밭 위치까지 고려해 가며 당선에서 모든 상황을 판단해 지시하고, 이에 따라 ‘망선’과 ‘닷배’에서는 일정한 목적지까지 그물을 당겨온다.
또 양쪽으로 그물이 너무 좁혀짐으로써 고기들이 도망가는 일이 없도록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시켜 가며 그물을 당겨야 한다.
6) 방진 설치
목표 지점까지 그물을 끌어와 고기들을 에워싸 놓는 위치는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면서, 썰물이 극에 달했을 때라도 수심이 얕아 작업하기에도 수월한 곳이어야 한다. 붙박이를 끝내고 나서 썰물이 최간조에 달했을 때 포위해 둔 고기들을 잡아 나가기 시작한다.
7) 장막 후림
붙박아둔 방진 그물 아래 가둬둔 고기들을 다시 다른 그물로 몰아 잡아나가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선’으로 이용되었던 거룻배 두 척이 그 안으로 들어가 길이 12발, 폭 5m 되는 그물을 수심이 비교적 얕은 곳에 드리워놓고 천천히 수심이 깊은 쪽으로 고기들을 몰아간다.
수심이 얕은 쪽을 ‘개코’, 깊은 쪽을 ‘한불턱’이라고 한다. 이때 방진 그물 주위 다섯 군데에서 부표 기능을 하고 있던 배들 중 두 척의 배는 그 안으로 들어가 ‘장막후림’에 포위된 멸치들을 ‘족바지’라는 손잡이용 그물로 떠담으며 뭍으로 운반해 나간다.
[북제주군의 ‘그물접’ 사례]
1. 북제주군 한림읍 금능리 ‘그물접’ 사례
이 마을 서쪽 갯가 모래밭에 방진 그물이 사용되어져 왔다. 동일한 어장에서 고기를 잡는 ‘그물접’은 셋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중심이 된 ‘구접’과 ‘신접’, 그리고 섯동네 사람들이 중심이 된 ‘복젱이 선접’ 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접이 ‘구접’, 그 이후에 결성된 접이 ‘신접’이다. ‘복젱이 선집’은 사연이 있다. ‘복쟁이’는 복어의 제주말이다. 멸치들이 몰려들었나 싶어 그물을 힘껏 드리워 당겨봤더니 멸치는 한 마리도 안 보이고 ‘복쟁이’만 그물에 가득 차 있었다.
그 후로 그 ‘그물접’을 ‘복젱이 선접’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마을 세 접들의 운용에도 규칙이 있다. 세 ‘그물접’ 으뜸들이 염처에 모여 순번을 정한다. 만약 오늘 멸치가 어장으로 많이 몰려와 ‘구접’과 ‘신접’에서 그물을 드리우게 되면, 내일은 나머지 한 접인 ‘복젱이 선접’이 제일 먼저 그물을 드리우게 되는 것이다.
2. 북제주군 조천읍 신흥리 ‘그물접’ 사례
이 마을 앞 갯가는 드넓은 백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 ‘엿개’라는 포구, 돌그물 격인 ‘큰개’ 문어들의 산란장 ‘뭉개여’, 그리고 ‘방진터’가 있다. ‘방진터’가 바로 방진 그물 터이다.
방진 그물 공동 어로 조직으로는 ‘묵은 그물접’과 ‘새 그물접’이 있었다. 음력 정월달에 차례가 정해지면 그물을 드리우건 못 드리우건 간에 하루씩 바꾼다. 한 마을에 두 개 그물 조직이 있어 무조건 하루씩 번갈아가며 그물을 드리우는 관행은 우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