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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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終達浦 |
영어음역 | Jongdalpo |
영어의미역 | Jongdalpo Port |
이칭/별칭 | 소금밧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란영 |
성격 | 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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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었던 포구.
[개설]
종달포는 지금의 구좌읍 종달리의 소금밧과 그 주변을 두고 이른 말이며, 「제주삼현도」에 나와 있는 종달촌이라는 마을 이름을 취한 포구의 이름이다.
「제주삼현도」에서는 종달촌 앞에 종달포가 있다고 하였다. 종달촌은 이웃 역석촌과 함께 깊게 후미진 만을 거느리고 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확인이 되는 두 마을의 소금밭이 아닌가 한다.
종달리는 한때 제주 최대의 소금 생산지로 터를 잡았다. 소금하면 종달, 종달하면 소금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유명하여 종달리 주민들을 소금바치(소금밭 사람)라 부르기도 했다.
『한국수산지』에 따르면 1573년(선조 6)에 강려 목사가 해안의 모래판을 염전의 적지로 지목하고, 이 마을 유지를 육지부로 파견해서 제염술을 전수받게 하여 제염을 장려한 것이 제주도 제염의 효시라고 한다.
1900년에는 353호 가운데 제염에 종사하는 사람이 160명에 달했고, 소금을 생산하는 가마는 46개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1년에 89,052근의 소금을 생산했다고 한다.
[구성]
종달포 주변에는 가매기물(우물), 조개왓(조개서식지), 소금밧(후미진 만으로서 염전으로 이용), 자리코지(소금밭으로 가는 배를 썰물 동안에 매어두었던 자리[席]), 족은여(코지), 중퉁굴(해변) 등이 있다.
지금 지명으로 드러나는 소금밧 어귀에 자리코지라는 지명이 보인다. 자리코지의 자리는 배를 붙이는 자리[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당시 소금밧에서부터 자리코지까지를 두고 종달포라고 하였다. 종달포는 지형 조건이 뛰어나나 조수 조건이 열악한 포구였다. 그래서『남사록』에서도 병선을 들여 놓을 수 있는 포구에 끼어 넣지 않았다.
[현황]
1969년 6월 종달리 간척지 개답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매립을 하였다. 지금은 바다도 아니고 논도 아닌 모습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