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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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鍾時 |
영어음역 | Hong Jongsi |
이칭/별칭 | 중립(中立),연농(硏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읍장을 지낸 관리.
[활동사항]
1894년(고종 31) 제주관찰부의 주사 및 제주지방재판소의 판임관으로 관리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5년(고종 42)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그만두었다. 1900년(고종 37)을 전후한 시기에 김윤식(金允植) 등의 유배인과 어울리면서 개화사상에 눈을 떴고 시 동인 모임인 귤회(橘會)의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김윤식은 홍종시에 대하여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 “제주의 홍종시는 집안에 좋은 글씨와 그림을 많이 간직하였으니 풍류가 넘치는 문사(文士)이다”라고 평하였다. 제주향교의 도훈장(都訓長)으로 후진을 양성하기도 하였다.
제주군수 윤원구(尹元求)가 의신학교 설립 운동을 전개할 때 정현구(鄭顯龜) 등 유지 13명과 함께 발기인이 되어 설립 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 통치를 실시하면서 민족주의자들을 회유할 때 제주면장에 등용되었다. 1931년 제주면이 제주읍으로 승격되자 초대 읍장이 되었고 1934년 78세의 나이로 물러났다.
[작품 및 저술]
서화에 뛰어나서 그가 타계한 지 반세기가 지난 1989년에 『연농선생유묵집(硏農先生遺墨集)』이 발간되었다. 또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일동 1313번지[삼성로 22]에 있는 제주 삼성혈 정문의 건시문(乾始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번지[추사로 44]에 있는 추사 적거지의 추사김선생적려유허비(秋史金先生謫廬遺墟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외도동에 있는 외도천 가의 월대(月臺),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명월천 가의 명월대(明月臺) 등은 모두 그의 필적으로 쓰여 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