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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2651
한자 洪允愛
영어음역 Hong Yunae
이칭/별칭 홍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순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신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성별
생년 미상
몰년 1781년(정조 5)연표보기

[정의]

조선 후기 제주로 유배된 조정철을 변호하다 죽은 여인.

[가계]

본관은 남양. 일명 홍랑(洪娘)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향리를 지낸 홍처훈(洪處勳)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활동사항]

1777년(정조 1) 9월 11일 노론 벽파에 속하였던 조정철(趙貞喆)이 제주로 유배되어 제주성 안에 있던 신호(申好)의 집에 귀양지를 마련하였다. 홍윤애조정철의 귀양지를 드나들며 시중을 들었고, 1781년(정조 5) 2월 30일에는 조정철의 딸을 낳았다.

1781년 3월 소론의 김시구(金蓍耉)가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노론의 조정철 집안과는 할아버지 때부터 대립하였던 김시구는 제주에 도착하자 조정철을 죽일 뜻을 갖고 죄상을 캐기 시작하였다.

김시구홍윤애를 참혹하게 고문하여 조정철의 죄상을 캐고자 하였지만, 홍윤애는 모든 사실을 부인하였고 끝내 자신의 죽음으로 조정철을 변호하였다. 김시구는 죄상을 밝힐 증거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을 죽인 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제주도에서 유배인이 정조 시해 음모를 꾸민다는 장계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제주순무안사시재어사(濟州巡撫按査試才御使) 박천형(朴天衡)을 제주도로 파견하여 조사하였지만 아무런 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조정철은 무혐의로 풀려나 1782년(정조 6) 1월 정의현으로 이배되어 그곳에서 9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1790년(정조 14) 9월 추자도로 이배되어 13년의 세월을 보냈다. 1805년(순조 5) 귀양에서 풀려나고 관직도 복귀되었다.

조정철은 다시 기용된 지 7년 만인 1811년(순조 11) 제주목사 겸 전라방어사가 되어 제주에 부임하게 되었다. 자신을 위해 죽은 홍윤애의 무덤을 찾았고 자신의 명의로 묘비를 세웠으며 딸도 만났다.

[묘소]

묘소는 원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전농로 불교회관이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1936년 이곳에 제주공립농업학교가 들어서면서 제주시 애월읍 금덕리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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