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25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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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缸坡頭里土城 |
영어음역 | Hangpaduritoseong |
영어의미역 | Hangpaduritoseong Fortres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514-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일우 |
성격 | 성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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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토성 |
건립시기/연도 | 고려 후기 |
관련인물 | 김통정 |
길이 | 6㎞ |
면적 | 113만 5476㎡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 514-1 |
문화재 지정번호 | 사적 |
문화재 지정일 | 1976년 9월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고려 시대의 토성.
[개설]
항파두리 토성은 제주 지역의 삼별초 지휘부가 들어섰던 곳으로 항몽의 주요 거점이었다.
[건립경위]
성을 축조할 때는 방어의 일차적 요소인 지형도 중요하지만 생활에 필요한 음용수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항파두리 토성의 음용수는 성의 북서쪽 외곽에 발달된 구시물 등의 용천수와 각 하천의 웅덩이 등에 고인 담천수였을 것이다.
항파두리 토성은 해안에서 좀 올라온 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가파른 입지, 비교적 풍부한 음용수 조건, 양호한 토양 조건 등을 갖추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용암이 흘러 굳은 거친 바위들이 많아 방책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해변에는 크고 작은 포구들이 형성되어 있어 군사용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항파두리 토성의 위치는 제주도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촌락들과 가까워 필요한 물자를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며, 한라산과 주변에서 나무들을 잘라 건축 자재로 이용할 수 있었고, 산돼지, 사슴, 노루 등 산짐승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제주도는 토양이 화산회토(火山灰土)이기 때문에 접착력이 강한 흙들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항파두리 토성 일대에는 기와를 구워낼 만큼 질 좋은 진흙들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전투용 토성을 축조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형태]
항파두리는 길이가 대략 6㎞였고, 외성과 내성을 갖춘 이중성이었다. 외성은 흙으로 만들어진 토성이고, 내성은 외성 안 중심부에 돌을 쌓은 둘레 750m의 정사각형 석성이다.
항파두리 토성은 자연적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성의 동쪽에는 고성천이, 서쪽에는 소왕천이라는 하천이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항파두리 토성은 토축만으로도 아주 견고한 요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토축은 또한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고속 군사 도로로도 활용되었다. 이는 김통정이 백성들에게 재와 비를 걷어들여 재를 성 위에 뿌린 다음, 말꼬리에 빗자루를 매달아 성 위를 달려 재가 안개처럼 사방을 뒤덮게 함으로써, 백성들 사이에 자신이 구름 위를 난다는 이야기가 돌도록 했다는 구전에서 엿볼 수 있다.
토성이 자리한 동서, 남북 단면을 보면, 북쪽 토성 부근은 능선이 급경사로 내려가고, 동쪽과 서쪽 역시 급격한 경사면을 둔 하천 절벽에 성벽을 만들었다. 인위적으로 성벽을 높이 쌓아올리지 않고도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해 외부로부터의 적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상공에서 바라보면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불규칙한 장타원형이다. 하천을 낀 지형을 이용하다 보니 정형성이 없어진 것이다. 성의 둘레는 약 6,000m, 면적은 113만 5,476㎡다. 장축은 남동에서 북서로 연결되는 선으로 직경이 1,450여m이고, 최단축은 남서에서 북동으로 이어지는 선으로 직경은 660여m에 달한다.
성의 중앙부는 해발 150~165m의 평탄한 대지로, 내성을 쌓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문헌 기록에 의하면 “내성은 석축으로 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돌을 서로 얽혀 쌓아 그 안을 잡석으로 채운 형태의 석축성 잔해가 일부 남아 있다.
한편 내·외성 이외에 항파두리 토성 북측의 구시물과 옹성물 같은 수원(水原)을 보호하기 위해, 외성 밖으로 다시 보조성도 구축했음이 확인되고 있다. 1997년 4월 18일 토성을 포함한 이곳은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으로 명명되어 사적 제396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항파두리 토성은 1273년(원종 14) 고려 개경 정부의 김방경(金方慶)과 몽골의 홍다구 장군 등이 여·원(麗·元) 연합군 2,000명을 이끌고 제주도에 들어와서 4일, 육지부에서 출동한 지 20일여 만에 함락시켰다. 이로써 3년여 동안 이어진 제주 삼별초의 항몽 활동은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