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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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 |
영어음역 | jangot |
영어의미역 | veil-style women's overcoat |
이칭/별칭 | 장의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고부자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에서 입던 여자의 전통 의례복.
[개설]
장옷은 한자로 ‘장의’(長衣)인데 겉옷인 포(袍)의 일종이며, 조선시대 말기에는 여인들이 외출할 때 사용하였던 내외용(內外用) 쓰개였다. 제주에서는 혼례복과 호상옷[壽衣]으로 쓰였다.
[연원]
언제부터 어떤 용도들로 쓰였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육지(陸地)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에는 조선 초기부터 제주의 장옷과 같은 것이 있으니 이들을 통하여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장옷 입기는 반상(班常) 의식이 사라지면서 1인용 가마를 탔던 마지막 시기인 1900년대 중반까지 맞물려 끝난다. 광복 전후 약 10여 년 간은 육지부처럼 관복(冠服)입기가 유행하였으며, 색시들은 원삼(圓衫) 입기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때 원삼과 장옷이 잠시 혼용되다가 이후는 서양풍이 들어와 혼례식을 교회나 공회당에서 하는 것이 유행하면서 전통 혼례 양식과 함께 장옷도 사라졌다. 그러나 이 혼용기를 거친 사람들도 호상옷은 혼례복의 변화와는 달리 장옷을 준비하였다.
[형태]
장옷의 형태는 두루마기와 거의 같으며, 다른 점은 소매 끝에 흰색 끝동을 넓게 대었다. 옷깃·옷고름·겨드랑이에 대는 삼각형의 무는 자주색으로 대었고, 깃에는 동정을 달았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육지에서는 나이나 계절에 따라 젊은 여자들은 녹색을, 노인은 주로 흰 것으로 하였다. 여름에는 얇은 사(紗)로, 겨울에는 두꺼운 명주나 비단 등으로 하여 방한(防寒)을 겸했다. 제주에서는 ‘맹주(明紬)가 비단’이라고 할 만큼 명주로 만든 것이 귀했으며, 물들인 옷을 ‘물색장옷’이라 하여 흰 것보다 더 귀히 여겼다.
제주에는 “살아 한 번 호사, 죽어 한 번 호사”라는 말이 있다. 살아서는 혼례 때 호사를 하고, 죽어서는 호상치레 때 호사를 한다는 뜻이다. 장옷은 여자 호상옷의 제일 큰 예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