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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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樸 |
영어음역 | Im Bak |
이칭/별칭 | 원질(元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일우 |
[정의]
고려 후기 제주선무사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길안. 자는 원질(元質). 길안임씨의 시조이다.
[활동사항]
1360년(공민왕 9) 과거에 급제하여 개성참군이 되었고,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병법에 밝아 원수 김득배(金得培)의 막하에서 활약하였다. 1363년(공민왕 12) 서장관으로 이공수(李公遂)를 따라 원나라에 갔다.
당시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이 왕위를 탐내어 원나라 순제에게 공민왕이 홍건적에게 죽었다고 거짓으로 고하여 순제는 덕흥군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에 임박은 이공수와 더불어 왕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덕흥군 일파의 협박과 유혹을 끝내 물리쳤다.
1367년(공민왕 16) 제주선무사로 파견되었다. 제주에 와서는 목호(牧胡: 몽고가 제주에 설치한 국립목장의 우두머리 세력)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을 제주의 만호에게 당부하였다. 또한 역대에 걸친 성주(星主)와 왕자의 충성, 그리고 고려 조정의 후한 대접을 상기시면서 목호와 함께 난을 일으키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제주에 왔던 관리들이 가렴주구를 많이 행하였으나, 임박은 전라도 나주 물을 항아리에 담아갔듯이 제주에서는 먹을 물조차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에 제주민은 감격하였으며 ‘제주에 온 관리가 임박과 같이 처신한다면 반란을 일으키겠는가’라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기뻐하였다.
그러나 제주민 가운데는 비웃는 자도 있었다. 어느 곳의 물을 먹든 똑같이 주민의 물을 취하는 것인데, 임박이 나주의 물은 먹고 제주의 물은 입에 대지도 않으려 한 것은 그동안 제주에 왔던 관리의 수탈과 그에 대한 비난을 의식해 일부러 취한 가식적 행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개경으로 돌아와서는 신돈(辛旽)에게 발탁되어 차자방지인(箚子房知印)이 되고, 신돈에게 전민쟁송(田民爭訟)을 처리할 기관을 세우도록 건의해 추정도감이 설립되자 그 장관으로 임명되어 많은 쟁송을 처리하였다.
1375년(우왕 1) 이인임(李仁任)이 북원(北元)과 국교를 맺으려고 꾀하였는데, 박상충(朴尙衷) 등과 함께 반대하였다. 이로 인해 대간의 탄핵을 받아 길안(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에 유배되고, 다시 전라도 무안으로 이배되는 도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