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10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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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塞自尼 |
영어음역 | Saekjan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좌동열 |
[정의]
조선 전기 제주 출신의 내의원 의녀.
[개설]
조선시대 의녀는 1406년(태종 6)에 창설될 때부터 주로 부인병의 치료와 침구술을 겸행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제생원에서 양성하였으나 그 후 제생원이 혜민서에 병합되면서 그 임무는 내의원과 혜민서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그 후 성종 말기부터 연산군 때에 이르러 의녀들은 의서를 습독하는 것 이외에 가무를 배우며 화장을 하여 기녀들과 함께 공적 또는 사적 연회에 참가하였다. 그 외에도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혼수에 사치가 심하였으므로 의녀들을 보내어 혼수품의 과다함을 검사하게 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사대부의 죄인을 체포할 때 의녀들에게 아녀자의 방을 수색하게 하였는데 이로 보아 당시에는 의료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들도 의녀에게 맡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종 때 의녀들이 연회에 참가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치료 및 의술 공부에 전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종 때까지도 의녀들을 약방 기생이라 하여 기녀들과 함께 연회에 참석시키는 것은 여전하였다. 다만 의녀들의 머리에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족두리를 씌워 다른 관기보다는 그 품위가 높은 것을 표시하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천시되었으므로 1884년(고종 21)에 갑신정변이 일어난 뒤 노비제도가 폐지되고 서양 의법에 의한 왕립병원을 설립하여 근대식 간호원을 모집하려 하였으나 이 같은 전통으로 말미암아 지원자가 없어 의료 사업에 많은 지장이 있었다.
[활동사항]
세종 때 제주 정의현의 여인으로, 안질을 치료하는데 뛰어난 의술이 있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430년(세종 12) 12월 제주목사 김흡(金洽)에게 전지를 내려 색자니를 내의원의 의녀로 임명하였고 남편, 자식들도 모두 상경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