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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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日準 |
영어음역 | Kim Iljun |
이칭/별칭 | 훈재(薰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1067[함덕8길 14-1] |
시대 | 근대/근대 |
성격 | 항일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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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1067[함덕8길 14-1] |
성별 | 남 |
생년 | 1911년 |
몰년 | 1960년 |
본관 | 경주 |
[정의]
일제강점기 제주 출신의 항일운동가.
[활동사항]
1927년 3월 조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10월 서울의 중동학교를 중퇴하였다. 1930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신문 배달을 하면서 사회주의 서적을 탐독하며 민족 의식을 키웠다.
1930년 11월 귀향하여 조국 광복을 위한 동지로 송건호(宋健浩)·김유환 등을 규합하였다. 1931년 일본에서 병으로 죽은 항일운동가 한영섭(韓永燮)의 장례식이 제주에서 치러질 때, 공산주의를 강조한 만장을 게양하고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하였으며 한영섭 추모비를 세웠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31년 12월 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형 확정시까지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1932년 3월 신좌소비조합 함덕지부를 개설하여 소비조합 운동을 하는 한편 부병훈(夫秉勳) 등과 수시로 밀회하며 의견을 교환하였다.
1932년 8월부터 김두경(金斗璟)·김경봉(金京奉)·부생종(夫生鍾)과 연계하여 제주 혁명적 농민조합 준비위원회의 구좌면·신좌면의 조직을 담당하였다. 1933년 2월 상순 부병준, 김원근(金元根)과 농민운동의 기초 조직에 대해 논의하였고 2월 중순에는 부생종도 합류시켰다. 1934년 4월에는 김두성·김원근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일제의 감시가 계속되자 함경북도 나진으로 피신하였으나 그곳에서 체포되었다. 1937년 4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