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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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非衣 |
영어음역 | Kim Biui |
이칭/별칭 | 김비을개(金非乙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찬흡 |
[정의]
조선 전기 유구(琉球)에 표류되어 귀환한 제주인.
[활동사항]
일명 김비을개(金非乙介)라고도 한다. 1479년(성종 10) 강무(姜茂), 이정(李正) 등과 함께 표류되었다가 유구(일본 오키나와)에 들려 2년 만에 무사히 귀환하였다. 이들이 들른 섬의 풍속이 참으로 기이하여 성종은 홍문관에 명하여 그 전말을 아뢰도록 하였다. 표류 전말은 다음과 같다.
1477년(성종 8) 2월 1일 김비의·강무·이정·현세수(玄世修)·김득산(金得山)·이청민(李淸敏)·양성돌(梁成突)·조귀봉(曹貴奉) 등은 진상할 제주산 밀감을 싣고 항해하던 중 추자도 앞바다에서 폭풍을 만났다. 출항 11일째에 김득산이 병사하고 14일 만에 어떤 섬 해안에서 파선되어 김비의 등 세 명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익사하였다. 세 명은 나무판자에 의지하여 표류되어 유구에 도착하였다. 유구에 도착하여 왕궁과 사찰 등을 두루 살펴보았다. 1개월 동안 객관에 머물면서 후한 대접을 받으며 기이한 섬의 풍물을 보고 1479년 6월 22일 제주로 돌아왔다.
조정에서는 김비의·강무·이정에게 2년간 부역을 면제해 주고, 반년의 녹봉과 바다를 건널 양식과 저고리 및 철릭(저고리와 치마가 붙은 형태의 남성용 옷) 하나씩을 내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