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T05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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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仰-風習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
집필자 | 심재석 |
유교식 포제와 포단
납읍리의 유교는 종교라기보다 일상생활의 규범과 예절로서 내려오고 있다. 가까운 집안끼리는 물론이요 이웃이나 향인 중에 관혼상제나 기타 큰일이 닥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여 위문과 경축을 주고 받으며 서로 협조하였다. 제주도에서도 유교적인 특성이 가장 강한 지역이어서 납읍리에서 매년 거행되는 마을 포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잘 보존되고 있다. 납읍마을에는 일상생활에서도 유교적인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다.
포제단은 금산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납읍에 포단이 생긴 연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숙종 10년(1684) 거듭되는 흉년과 우마 전염병이 만연하자 주민들이 협의하여 된밭(금산공원)의 중앙에 제단을 마련하고 봄, 가을에 산천신제를 지냈다. 숙종 28년(1702)에 목사 이형상이 불사와 당을 부수었으므로 본 리의 불사도 철훼되었는데, 지금도 기왓장 등 유물이 발견되며, 그 지명도 남아 있다. 숙종 32년(1706)에 목사 김정규는 무격의 미신을 금하였으나 숙종 45년 다시 산천신제를 허용하였다.
전년에 목사 이형상이 폐지하였으나 그 후 연이어 기아와 괴질이 발생하여 근심이 그칠 사이 없으므로 주민들이 다시 복구해 주기를 목사에게 청원하니 조정에 건의하여 다시 허용이 된 것이다. 그 뒤 다시 불사를 신앙하는 한편으로 무속에 의지하여 산천신에게 길운을 축원하며, 바다로 나갈 때는 해신제를 지낸다.
지금도 매년 1월 초정일에 포제를 지낸다. 제관과 유사는 마을 총회에서 선출한다. 노인회와 청년회, 부인회가 모두 힘을 모아 마을 포제를 정성껏 준비한다. 납읍의 포제는 유교식으로 한다고 널리 알려져 요즘에는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매스컴, 학자, 주변 마을에서 온 참례객들이 방문을 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행사를 무사히 잘 치르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단 포제에는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의 참례를 금하고 있다. 납읍리의 포제는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로 제주 마을 포제 중 잘 보존되어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