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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입동의 마을 의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T03004
한자 健入洞-儀禮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집필자 김미진

칠머리당굿

한 마을에 두 가지 상이한 마을 공동체 신앙이 공존하는데, 심방(무당)이 주도하는 무속식 제의인 당굿과 유교식 제의인 포제로 구성된다. 당굿은 여성들이 주관·참여하며, 포제는 남성의 전유물이다. 양자는 제장 및 형태도 대조적이다. 당굿은 마을별로 독특한 특징을 지니는 당에서 푸닥거리를 하며 화려하고 떠들썩하게 지내는 반면, 포제는 상석이 갖추어진 포제단에서 12제관이 모여 유교식 절차에 맞게 정숙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건입동의 당굿은 칠머리 당굿으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1980년 11월 17일)되어 있는 칠머리당은 원래 사라봉 및 건들개[健入浦]의 칠머리에 있었던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그러나 지금은 칠머리당이 있었던 동산 위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칠머리당은 원래의 위치에서 현 부두터미널 부근의 ‘구릉곶’으로 옮겨졌다가, 산지항 공사로 산이 깎이는 바람에 ‘칠머리’는 해안도로가 되고, 당은 사라봉 뒤쪽 새 부지로 옮겨졌다. 칠머리당은 해신당으로 산지와 탑동 등의 배부리는 사람, 어부, 해녀들을 관장하고 수호하는 당이다. 당에는 세 개의 비석을 모셨는데, 이 비석은 삼신위(三神位)로 좌로부터 당신(堂神)인 ‘도원수 감찰지방관’과 그의 처신(妻神) ‘요왕국 요왕부인’ 그리고 ‘영등신’이다.

칠머리당은 해신당이기 때문에 해마다 영등 2월에 영등굿을 한다. 음력 영등 2월 초하루 영등신을 맞이하고 2월 14일 영등송별제를 한다. 이때 용왕맞이를 하여 바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영감놀이를 하여 어부의 수호신인 뱃선왕 영감신을 놀리고 보내는 것이 영등굿이다. 제일은 음력 2월 초하루와 2월 14일이고 심방의 계보는 이달춘-안사인-김윤수로 이어진다. 이달춘 이전의 계보는 밝혀지지 않았다. 안사인에 이르러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고 안사인이 사망하자 칠머리당굿 이수자인 김윤수가 그 뒤를 이어 계속하고 있다.

칠머리당굿의 신과 제물

건입동은 바다 마을이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아왔다. 바다밭의 풍등이 그들의 주요 기원 사항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바다밭의 풍등을 좌우한다고 믿어지는 영등신을 중시한다. 그래서 칠머리당에 본향신과 함께 영등신을 모시고 있다. 실제 굿이 벌어지면 본향당신을 위한 굿은 뒷전으로 밀리고, 영등신을 위한 굿이 성대하게 벌어진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차려 가는 제물은 모시는 신위가 셋이므로 이에 따른다. 메를 세 그릇 마련하고, 과일·해물·시루떡·백편 등을 차린다. 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배선왕 몫으로 선왕다리라 하여 시렁목 1필에 선박 이름과 가족 이름 등을 적은 것을 마련하며, 가족 중에 익사한 사람이 있는 집에서는 그 숫자만큼 물에 빠진 영혼을 위한 밥그릇을 추가하여 마련한다. 마을 전체의 기원용으로 차려 올리는 도제상은 선주회장과 동장이 제물과 폐백을 올리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도제상으로는 초감제상·영등호장상·제석상·용왕맞이상·용왕차사상·법령상·공싯상 등이 있다.

포제

흔히 ‘마을제’라고 불러지고 있는 포제는 제주도 각지에서 올리고 있는데 건입동에서도 해마다 마을 주민의 강녕과 행복, 융성과 발전을 기원하는 마을제를 지내고 있다. 날짜는 음력 정월 상정일 또는 중정일이나 아니면 해일로 관계자들이 모여 의논하여 정에 맞는 날을 골라 제일을 잡는다, 택일이 되면 이날의 자시가 바로 행제시가 된다. 2007년 건입동 포제는 2월 21일에 거행되었다. 제관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을 비롯하여 12제관을 선정하고 전사관은 모든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제삿날 3일 전에는 제사에 임하는 제관 전부가 제사장소에 모여 외부 출입을 삼가고 마음을 가다듬어 깨끗이 목욕하는 정성을 해야 하는데 이를 입재라 한다.

건입동 포제(마을제)는 1943년부터 봉행 하였으나 여러 번 장소를 옮겼다. 광복 전에는 금산 동편 언덕 제단에서 봉행했었고, 1946년부터 1991년까지는 건입동사무소에서, 1992년부터 1996년까지는 노인당에서, 1997부터는 사라봉 입구에 있는 포제당에서 봉행하게 되었다. 현재의 포제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1974년 지어진 것인데 처음에는 국가유공자 위패 봉안 및 위령제를 행하던 낙천당으로 쓰이던 곳인데 충혼각으로 쓰이다가 1991년 시장의 허가를 받아 노인당으로 사용하다가 1997년부터 건입동 마을회에서 관리하며 포제당으로 쓰이고 있다.

고봉만은 전사관으로 제물을 준비한 경험이 두 번 있고 제관 중 가장 우두머리인 초헌관도 지낸바 있다. 사라봉 입구에 있는 포제단은 충혼각으로 사용 했던 집으로 지금은 그곳에서 포제를 하는데 제주도 안에서 포제를 모시는 게 다른 데 보다 유별난 특징이 있다고 고봉만은 말한다. 포신 한 사람만 입회를 붙이거나 토신까지 해서 둘을 붙이는 데는 있어도 귀신 셋을 붙이는 데는 건입동 밖에 없다고 했다. 용담동도 포제를 지내는데 여기는 토신 포제라고 한다고 했다. 건입동 포제는 토신, 포신에 가신이 하나 더 붙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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