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T0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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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
집필자 | 문순덕 |
은행원 시절
김금심은 제주여중 4학년(중고등학교 통합 학제임) 때 교원양성소에 들어갔다. 교원양성소는 지금 제주교육대학교 전신이다(교원양성소→사범학교→교육대학). 당시 교사는 동광양에 있는 기와공장에서 운지당(동문시장 골목을 올라가면 있음)으로 옮겼다. 교원양성소에서 한 6개월 교육을 받으면 준교사자격증을 주었고 교생실습도 했다. 김금심은 교사자격증을 취득한 후 도두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고 출근하는데 친정아버지가 반대해서 얼마 못가서 그만두었다. 그 당시는 묵은성에서 도두까지 걸어 다녀야 하니까 친정아버지 생각에 김금심이 딸이라 여러 가지로 불안해했다고 한다. 김금심은 교사를 그만두고 ‘흥업은행’(중앙로 우리은행 위치)에 취직해서 결혼할 때까지 근무했다. 1954년에 은행원이 되어서 1957년 결혼 때까지 약 4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그 후에는 전업주부로서 가사, 육아, 교육에 전념했다. 그 당시에 결혼날짜를 잡으면 여성들은 사표를 내야 했다고 한다.
동창회
김금심이 가입한 모임이라는 것은 주로 제주여중 동창회라 한다. 김금심이 20대 후반에 중학교 동창회가 친목단체처럼 조직되었는데 젊은 시절에는 살림살이가 바빠서 동창회라고 해도 한달에 한번 모였지만 점심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지금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서 만남에도 여유가 있다고 한다. 서울에도 15명 정 되고 제주에는 20명 정도가 모여서 점심도 먹고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동창회에 가면 시대에 따라서 대화 내용이 달라졌다고 한다. 자녀들이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혼인할 나이가 되면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모두 나이가 드니까 사망한 동창도 있어서 ‘노후, 죽음, 수의’ 관련 대화를 한다고 한다. 동창이라고 해도 오랫동안 만나니까 친한 친구처럼 흉허물 없이 이야기도 나누고, 경조사도 돌아본다고 한다.
일상과 마을생활
제주시에서는 대체로 1960~1970년대에는 모임이 있으면 주로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손님을 대접했는데 1970년대 후반부터는 대중음식점에 가서 대접하기도 했다. 이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번거롭고, 바쁘니까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며, 외식문화가 확산되면서 대중음식점 이용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여자들이 친목모임을 할 때는 집에서 윷놀이, 화투놀이를 하는 정도라 한다. 김금심도 노래방에 가서 놀기도 했지만 나이가 드니까 노래 부르는 것도 힘들고, 재미도 없어서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김금심은 집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을 즐기는데 체력이 조금 딸리고 아프니까 마음은 있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요즘은 손님용 음식준비할 일이 잘 없다고 한다. 김금심은 삼도2동에 살면서도 마을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한국걸스카우트 회원
김금심은 1971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걸스카우트 제주연맹 실행위원을 지냈다. 우선 1971년 1월에 8~9명이 주축이 돼서 제주시연합회를 창립했고(김길찬이 초대 회장임) 1979년에 제주도연맹 실행위원을 하면서 1986~1992년까지 한국걸스카우트 제주연맹 연맹장을 지냈다. 그 후 2년간 실행위원으로 있다가 그만두었다. 1992년부터 지금까지 제주여자학원 이사이며, 1992~1996년(2년 임기에 1회 연임)까지 제주여자고등학교 총동문회 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