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2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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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射石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22[이도 1동 1313] 삼성혈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종진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 1동 삼성혈 경내에 있는, 조선 영조 때 제주 목사 김정이 세운 탐라 시대 삼 신인 관련 유적비.
[개설]
삼사석비는 탐라국의 시조인 고(高)‧양(良)‧부(夫) 세 신인(神人)이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배필로 맞아 각자 살 땅을 정하려고 화살을 쐈다는 전설을 적은 비석이다. 2011년 5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삼사석비는 1735년(영조 11)에 부임한 제주 목사 김정이 그해 8월 탐라 개국 신화의 주인공인 고‧양‧부 세 신인의 자취를 기념하여 삼사석 옆에 세운 비이다.
[위치]
[형태]
관석 없이 비신으로만 되어있다. 크기는 비신의 높이가 94cm, 너비 42.8cm, 두께 13.1cm이며 재질은 제주산 조면암이다.
[금석문]
〈전면〉
중앙 : (삼)사석비[(三)射石碑]
명문 : 모흥혈은 오래 되었고, 화살을 쏘아 맞은 돌이 남아 있으니, 신인의 기이한 자취는 영원히 빛날 것이다.[(毛)興穴古 矢射石留 神人異蹟 交暎千秋]
〈후면〉
옹정 13년(1735) 8월 일 세움[擁正十三年 八月 日立]
[현황]
현재 화북 1동에 있는 삼사석비는 1930년 3월 7월 고한용(高漢龍)‧고대길(高大吉)‧고영은(高永恩)‧고성전(高聖銓)‧고승훈(高承訓) 등이 원래의 비를 그 자리에 묻고 그 옆에 다시 세운 것이다.
1930년 삼사석비를 개건하면서 묻었던 원래의 삼사석비는 1997년 7월 4일 땅속 50㎝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난 상태로 발굴되었다. 원 삼사석비는 접합하여 이도 1동 삼성혈 경내 전시관 앞마당으로 옮겨 세웠다.
비신의 파손에 의해 전면의 액자(額字)와 명문(銘文) 한 글자씩이 판독이 불가하다. 하지만 1930년 개건 당시의 비석과 김정이 남긴 문집의 명(銘)을 통해 파손된 글자가 각각 三(삼)과 毛(모)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 외관상 복원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삼사석비는 조선 영조 때 제주 성안에 삼천 서당을 세워 제주 백성들의 교육을 진작시켰던 목사 김정의 행적이 남아있는 비이다. 또한 새겨진 명문을 통해 세 신인에 의해 개국된 탐라의 존재가 옛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금석문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