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2046 |
---|---|
한자 | 橘叟小照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성로 40[일도2동] 제주도 민속 자연사 박물관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백종진 |
[정의]
1863년 미산 허은이 제주인 귤수 문백민을 그린 현존하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화.
[개설]
미산(米山) 허은(許溵)은 소치(小癡) 허련(許련)[1809~1892}의 첫째 아들이다. 찬(撰)을 지은 허련은 대정현에 유배 온 추사(秋史) 김정희를 만나기 위해 세 번을 제주에 들어왔다. 첫 번째 방문은 1841년(헌종 7) 추사가 유배 온 이듬해 2월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1843년 7월, 세 번째 방문은 추사가 유배에서 풀리기 1년 전인 1847년 봄이었다.
이렇게 제주를 세 번 방문하는 동안 제주 사람을 알고 지냈는데 초상화의 주인공인 귤수(橘叟) 문백민(文百敏)[1810~1872]은 그 중 한 사람이다. 문백민은 당시 제주성 안에 1천여 그루나 되는 귤나무를 소유했던 인물이다. 1863년(철종 14) 이른 봄 문백민이 찾아와 초상화를 부탁했다. 이에 아들인 허은이 초상화를 그리고 아버지인 허련이 찬을 짓게 된 것이다.
[형태 및 구성]
귤수소조는 세로 68cm, 가로 36cm의 비단에 채색하였다. 초상 상단에는 허련의 찬이 있고, 그 아래 문백민이 양태가 좁은 검은 갓{黑笠]을 쓰고 세조대(細絛帶)를 매고 창의류를 입고 앉아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초상 상단에 소치 허련이 찬한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귤수는 탐라인이다. 내가 십 수 년 전에 세 번 제주에 들어갔는데, 이 사람을 알고 지낸 것이 남달랐다. 오늘 갑자기 찾아 온 것 또한 남다른 뜻이 있어서였다. 아들 미산에게 명하여 그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으니 초상화를 보고 이마의 털이 많네 적네 하는 말은 일단 접어두고, 나의 끈끈한 정에 붙인다면 간직될 것이다.
이어서 찬하노니, ‘그대의 집 귤밭을 아니, 두터운 잎이 내린 눈을 업신여기고, 귤나무에 달린 숱한 알맹이의 맑은 향기는 가을을 유혹하는데, 한가로이 날마다 거닐면서 무엇으로 이것을 갖추었나. 풍취를 이뤘으면서도 그윽히 물러나 사니 급한 시류에서 과감히 물러나왔으이.’
계해년(1863) 초봄에 완성의 선교 객사에서 소치
[橘叟耽羅人也 余於十數年前 三入瀛海 而知此人異他矣 今忽來訪 亦有異他之意 命家兒米山 試寫其眞 顴影 額毛之得失 姑不論 寓余繾綣則存矣 仍以讚曰 知君屋圃 厚葉欺雪 有橘千頭 淸香媚秋 徜徉日涉 何以辦此 成趣則幽 勇退急流
歲癸亥首春 寫於完城之仙橋僑舍 小癡]”
[의의와 평가]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의 큰아들 허은이 제주인 문백민을 그리고, 소치가 찬한 작품으로,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하며 제작 배경, 제작 연대, 초상화의 주인공, 작가가 명확하다. 찬의 필체가 전형적인 소치의 것이고, 그림 양식도 소치 집안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당 시대 두 화가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제주인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 중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초상화로서 조선 후기 제주인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013년 10월 17일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