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1563 |
---|---|
한자 | 陽川許氏 |
영어음역 | Yangcheon Heossi |
영어의미역 | Yangcheon He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고, 허손(許愻)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연원]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을 조달해 준 공으로 허선문(許宣文)이 세거해온 공암의 공암촌주(孔巖村主)로 봉해져 그곳을 식읍으로 받았다. 양천허씨를 일명 공암허씨(孔巖許氏)라 함은 이에 연유된 것이다.
후손인 허성(許筬)은 별시문과에 올라 대사간·부제학·예조판서·병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허성(許筬)은 동생 허봉(許篈)·허균(許筠) 및 여동생 허난설헌(許蘭雪軒) 등과 함께 당시 이름난 문장가로 알려졌으며 성리학에도 통달했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허성(許筬)의 아우 허봉은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올라 사가독서(賜暇讀書) 한 후 교리·전한·병조판서를 지냈으며, 시와 문장에 뛰어나 많은 저서를 남겼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균은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다. 여동생 허난설헌은 시인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하였으며 애상적 시풍의 독특한 시를 남겼다.
[입향경위]
제주입도조 허손(許愻)은 시조 허선문(許宣文)의 15세손으로 고려가 망하자 자진하여 순국한 대제학 허흠(許欽)의 아들이며, 허손(許愻)의 형 허징(許徵)은 두문동 고려 절신 72인의 한 사람이었다.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지냈으며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 입도하여 구좌읍 종달리에서 은거하다 일생을 마쳤다. 3세손부터는 정의현 돈원(지금의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으로 옮겨 살았다.
[관련유적]
제주입도조인 허손(許愻)의 묘는 제주특별자치도 구좌읍 종달리(속칭 매망마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