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1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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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鄭氏 |
영어음역 | Dongnae Jeongssi |
영어의미역 | Dongnae Je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정형창과 정윤강을 입도조로 하는 제주의 세거 성씨.
[연원]
동래정씨의 시조는 신라 때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이다. 동래정씨가 조선왕조에서 배출한 정승은 17명으로 전주이씨(22명), 안동김씨(29명) 다음으로 많았다. 또 대제학 3명, 대과 급제자 198명을 낳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이다.
[입향경위]
정형창(鄭亨昌)은 시조 정회문(鄭繪文)의 후손으로서 연산군 중엽에 폭정으로 일어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정의현 남원리에 피신 입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입도조인 정윤강(鄭允剛)은 시조 정회문(鄭繪文)의 17세손으로 1519년(중종 14)에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사림파의 젊은 선비들이 피화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동래부에서 바다 건너 제주목 오라리에 입도 정착하여 은둔하였다.
[현황]
조선 세조 대와 성종 조에서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鄭昌孫)은 동래정씨가 조선왕조에서 처음으로 배출한 정승이다.
정창손(鄭昌孫)은 1426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응교(應敎)·집의(執義) 등을 거쳐 문과 중시에 급제한 후 집현전 직제학과 부제학을 지낸 다음 대사헌, 대제학, 병조,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단종 복위 사건을 고변(告變)한 공으로 봉원부원군에 진봉(進封)되고 대사성과 대제학을 겸했으며 이듬해 우의정에 올랐다.
1457년 좌의정으로, 그 후 영의정으로 승진되었다. 성종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이 되고 70세 때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궤장(几杖)를 하사받았으며, 1475년 영의정에 재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