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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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濟州靑年會 |
영어음역 | Jeju Cheongnyeonhoe |
영어의미역 | Jeju Youth Society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동전 |
[정의]
일제 강점기 제주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설립목적]
제주 청년회는 조선 민중 해방 운동의 선구가 되기를 기도한 18세 이상 40세 이내 청년의 통일 단결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조선 시대에는 청년이라는 개념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한국 사회에서 청년 단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제 침략기부터이다. 최초의 청년 단체는 1918년 제주읍 내 유력자 집안 출신 청년들이 결성한 청년 동우회였으며 이어 탐라 협회, 단풍회 등이 창립되어 제각기 회원들의 친목 활동과 함께 대중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4년 6월 당시 수양회, 탐라 협회, 단풍회 등으로 나누어져 통일적 청년 조직이 없음을 아쉬워하던 소장층은 이들 청년 단체들을 합쳐 좀더 체계적인 청년 운동 단체로서의 제주 청년회를 결성하였다.
창립 총회에서 간사장에는 김태민, 서무부 위원에는 박종식·문재창, 지육부 위원에는 최남식·한상호, 덕육부 위원에는 신금석·김창언, 체육부 위원에는 양창보·이창빈, 의사장에는 이한철, 의사에는 박교훈 외 7명이 선출되었다. 임원진에는 이전 청년 수양회를 이끌었던 한상호·김창언·박교훈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었다.
제주 청년회 결성에 따라 각 지역에서도 청년회가 조직되었으며 1925년 제주 청년회를 중심으로 모슬포 청년회·함덕 협성 청년회·조천 청년회·신촌 청년회·화북 청년회·모슬포 청년회·온평 청년회·서귀포 청년회·가파 청년회 등의 단체가 모여 제주 청년 연합회를 결성하였다.
1928년 좀 더 강력한 항일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제주 청년회는 제주 청년 동맹으로 개편되었으나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1930년대 이후 청년 단체 활동은 활발히 전개되지 못하였다.
[활동 사항]
제주 청년회는 각지에 소년 단체를 결성하였으며 청년 문고를 설치하여 청년 회원들의 의식 향상을 도모하고 야학을 개설하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과 사회 문제에 관한 토론회·강연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제주 지역에서는 제주 청년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 상당히 진보적이며 일제에 저항하는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강하여 경찰에서는 제주 청년회 활동을 감시하고 집회를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해방 이후에도 ‘청년회’하면 진보적이고 선구적인 항일 운동 단체로 인식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제주 지역의 사회 운동을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선구적인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