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1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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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正喜筆歲寒圖 |
영어음역 | Sehando |
영어의미역 | Winter Scene; 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유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12월 31일 - 김정희 필 세한도 국보 제180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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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김정희 필 세한도 국보 재지정 |
성격 | 회화 |
제작시기/일시 | 1844년 추정 |
제작지역 | 제주도 |
작가 | 김정희 |
양식 | 문인화 |
재질 | 지본수묵 |
서체/기법 | 갈필(渴筆)|검묵(儉墨) |
가로 | 146.4㎝ |
세로 | 23.3㎝ |
소장처 | 개인[손창근 소장] |
소유자 | 손창근 |
문화재 지정번호 | 국보 |
[정의]
[개설]
김정희 필 세한도(歲寒圖)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함께 김정희 그림의 쌍벽을 이루는 백미(白眉)이다. 갈필(渴筆)과 검묵(儉墨)의 묘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문인화로서, 제주도 유배 중에 그려졌다. 1974년 12월 31일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보로 재지정되었다.
김정희 필 세한도는 김정희가 원악절도(遠惡絶島)라고 하는 제주도 유형지에서 힘겨운 유배 생활을 하던 1844년(헌종 10)에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에서 두 번이나 귀한 책을 구해 보내준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칭송하며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형태 및 구성]
종이에 먹으로 그려진 두루마리 형식이다. 그림이 그려진 화면 오른쪽에는 화제(畵題) ‘歲寒圖(세한도)’라고 가로로 쓰여 있고, 세로에 작은 글씨로 ‘藕船是賞(우선시상)’이라는 관지(款識)가 있으며, 正喜(정희), 阮堂(완당)이라는 圖印(도인)을 찍어놓았다.
그림 왼편으로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는 이치에 빗대어, “권세와 이익으로 합친 자들은 그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시들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상적의 인품을 칭송하여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함에, 귀양 오기 전이라고 해서 더 잘한 것도 없지만, 귀양 온 뒤라고 해서 더 못한 것도 없네. 그러나 귀양 오기 전의 그대는 특별히 일컬을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귀양 온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일컬음을 받을 만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는 내용의 발문을 그림 끝에 붙여놓았다.
그 뒤를 이어서 이상적이 이듬해 북경에 가서 장악진(章岳鎭), 조진조(趙振祚) 등 그곳의 명사 16명의 찬시(讚詩)를 곁들어놓았다. 또한 훗날 이 그림을 본 추사의 문하인 김석준(金奭準)의 찬(讚)과 오세창(吳世昌), 이시영(李始榮)의 배관기 등이 긴 두루마리에 적혀 있다.
[특징]
김정희 필 세한도는 거친 필묵만 단아하게 그려진 그림으로, 화면 중앙에서 무게 중심이 좌우 두 그루의 나무 가운데 소나무에 쏠려 있고, 그 소나무의 가지가 세월과 추위를 이기듯 강고하게 표현되었다.
갈필로 빠르게 그려진 집 한 채는 군더더기를 뺀 사의(寫意)가 집약된 표현인 듯하다. 여백의 배분 또한 세 개의 화면 분할로 이루어져 화면의 정적인 안정감이 높다. 절제되고 고아(高雅)한 서화 일치의 멋을 풍기는 김정희 필 세한도는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 일파의 서화 이념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의의와 평가]
김정희 자신의 그림 솜씨와 문장, 그리고 여러 명사들의 시와 감상문이 어우러진 시·서·화의 품격이 전해지는 작품이자, 외롭고 고된 귀양살이에서도 단아하고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았던 추사 자신의 사의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