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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10892
한자 東明里寺址
영어음역 Dongmyeongnisaji
영어의미역 Dongmyeongnisaji Archaeological Sit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오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교 유적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 일대의 고려 시대 사찰터.

[개설]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에는 속칭 ‘문수물’, ‘문수물 동산’, ‘문수암 터’라 불리는 곳들이 있다. 현재 도로가 새로 개설되어 있는 ‘문수물 터’에는 오래된 비석이 서 있고, 길 맞은편에는 4·3 성터도 길게 이어져 있다.

옛날에는 인근 사람들이 문수천의 물을 사용했는데, 가뭄이 들면 한경면까지 소를 끌고 오거나, 허벅을 지고 와서 물을 길어갔다고 한다. 당시 문수천 지역은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서 소를 끌고 온 사람들은 소의 멍에를 나무에 묶고 순서를 길게 서서 기다렸다.

[변천]

문수천이 있는 문수동에서 서부 산업 도로 방향으로 달리다가 동래 정씨 이공 묘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하천을 따라 올라가면 개꼬리 오름 아래에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현재 이곳은 문수동 양씨의 문중밭으로 되어 있다.

예전에는 경계가 다른 두 개의 밭이었으나 양씨 문중에서 사들여 약 30여 년 전쯤 하나의 경작지로 조성되었다. 당시 이 밭을 개간한 양씨 문중 인사의 말에 따르면 이곳을 경작지로 조성할 당시 커다란 석축 7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밭을 조성하는 데 방해가 되어 모두 내다버렸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이곳이 절왓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마을의 원로들뿐이다. 다만 이 마을에는 문수천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수운교 대성암이 들어서 있다가 4·3사건 당시 소개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절왓을 찾으면 대부분 이곳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 대성암이라는 수운교 건물이 들어서 있던 곳이다. 대성암 터는 1933년에 창건되었다가 1948년 4·3 사건 당시 군경에 의해 소개되었고, 이후 한림읍 동명리로 옮겨가 현재 ‘천불사원’이라 불린다. 그러나 문수암이 있었던 정확한 위치는 아직도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 일대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위치]

한림읍 동명리 문수동에서 개꼬리 오름을 향해 달리다가 동래 정씨 이공 묘지 옆길로 150여m를 더 들어간 곳에 있다. 옆으로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밭으로 들어가면 개꼬리 오름이 한눈에 보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제주목 불우조에 의하면 문수암지한림읍 개꼬리 오름 북쪽 지경 기슭의 절왓 일대로 추정된다.

[현황]

문수암에 대한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았다. 문수동의 ‘汶水泉(문수천)’이라 새겨진 비명도 원래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의미하는 ‘文殊泉(문수천)’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불교를 배척하던 시대에 불교와의 관련을 없애기 위해 지금처럼 ‘汶水泉(문수천)’으로 기록했다는 증언도 있다.

[의의와 평가]

개꼬리 오름 기슭의 절왓과 관련하여 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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