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10832 |
---|---|
한자 | 製鹽技術 |
영어음역 | jeyeom gisul |
영어의미역 | Salt Manufacturing Techniques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경수 |
[정의]
제주 지역에서 예로부터 소금을 제조하던 기술.
[개설]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천일염전 방식은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데, 이 방식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강우량은 적고 기온은 높고 습도가 적어 증발이 잘 되는 지역이어야 한다. 이에 알맞은 지역으로는 지중해 연안·인도 서부·오스트레일리아 서부 등이 있으며, 태양에너지를 이용한 방식으로 제조된 소금을 천일염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한국에는 암염층과 지하 함수가 없기 때문에 소금 생산은 해수에만 의존하여 생산된 천일염을 식료용으로 공급하여 오다가 8·15 광복 이후부터는 외국으로부터 많은 암염을 수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수를 직접 농축하는 기계 제염으로 일부 소금을 공급하고 있으나 순도가 낮기 때문에 정제하여 순도가 높은 정제 식용염을 만들고 있다. 해수를 원료로 하는 제염 기술로는 천일 제염법, 기계 제염법, 그리고 최근에 관심을 끌고 있는 이온 교환막법(交換膜法) 등이 있다.
[관련기록]
제주 지역은 섬이면서도 소금이 넉넉하지 않아서 본토로부터 소금을 들여와야 했는데, 김정(金淨)도 이러한 상황을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가장 가소로운 것은 제주도의 바다는 사면을 둘러싸고 있으면서도 소금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해처럼 소금밭을 만들자니 만들 땅이 없고 또 동해처럼 소금을 굽자니 물이 짜지 않아 백배의 힘을 들여도 소득은 적다. 반드시 진도나 해남 등에서 구입해 온다.”
이렇게 김정은 소금밭을 만들 만한 땅이 없음과 바닷물의 소금기가 낮다는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첫 번째 지적은 화산섬이라 제주의 바다는 용암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두 번째 지적인 낮은 소금기는 땅속으로 스며든 빗물이 갯가에 이르러 솟아나는 용출수가 여기저기 많아 저절로 소금기를 떨어뜨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 이 두 가지 모두 제주도가 화산섬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한국수산지』에 의하면 1910년 안팎의 제주도 총인구는 12만 3079명이었다. 한 사람이 하루 필요한 소금양이 20g이라면, 1년에 1인당 7300g이 있어야 한다. 그때 제주도에서는 1년에 35만 4천 326근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다.
한 근의 소금을 그램(g)으로 환산하면 600g이니 제주도에서 1년 동안 나오는 소금은 2억 1259만 5600g뿐으로, 자급률이 고작 23.6% 정도였으니 나머지 76.4%는 다른 곳에서 들여와야 했다는 것이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표〉1910년 무렵의 소금 생산 현황
[염전]
『한국수산지』에 나타난 제주 지역 염전을 분류하여 본 결과, 제주 지역에는 크게 암석염전, 간석염전, 그리고 암석과 간석을 절충한 암석·간석절충식 염전의 세 가지 형태의 염전이 있었다. 암석·간석절충식 염전의 제염기술은 간석염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주 지역에서 간석염전은 ‘모살왓’이라 하였으며, 암석염전은 ‘소금빌레’라고 하였는데, 소금밭의 형태의 따라 제염법은 물론 제염 도구도 조금씩 달랐다.
간석염전의 평당 생산량은 약 6근, 암석염전의 평당 생산량은 약 33근 안팎으로, 이처럼 암석염전에서 소금을 얻는 예는 한국 본토는 물론 이웃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실로 ‘제주적’이라 할 수 있다.
[암석염전의 제염기술]
『한국수산지』에 나타난 제주 지역 세 곳에 있는 암석염전의 평당 생산액은 그 편차가 컸는데, 외도염전은 7.2근, 하귀염전은 33.1근, 구엄염전은 32.4근이었다. 평당 생산액이 낮은 암석염전의 제염기술과 평당 생산액이 높은 암석염전의 제염기술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외도염전과 구엄염전은 같은 암석염전이면서도 제염기술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1. 외도염전
외도염전의 제염기술에 대해서는 외도마을 박정언(남, 1916년생)을 통하여 상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외도마을 암석염전의 대부분은 낮은 곳에 있어 간만의 차이가 큰 사리 때에는 바닷물에 잠김에 따라 제염은 간만의 차이가 크지 않은 조금 동안에만 이루어진다.
암석염전에는 균열이 있는데 그 균열은 솜과 재를 혼합한 것으로 바닷물이 바깥으로 흐르지 않게 조금 높이 막는다. 비교적 햇볕이 뜨거운 날 바닷물을 그 안에 끼얹으면 바닷물은 햇볕에 잦아든다. 이렇게 잦아든 바닷물을 함수 또는 물이라고 한다.
빗자루로 쓸며 함수를 비교적 홈이 진 곳으로 몬 후, 직경 2.5㎝의 송진 방울을 만들어 그 방울을 함수에 띄운다. 송진 방울의 부침에 따라 함수의 농도를 가늠하는데, 무른 함수에서는 송진 방울이 가라앉고 그렇지 않은 함수에서는 송진 방울이 뜨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함수를 허벅에 담아 집으로 지고 와서 밥솥에 달여 소금을 만든다.
2. 구엄염전
『한국수산지』는 구엄염전의 제염기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구엄리 부근에는 연안의 광대하고 평탄한 암석 위에 이토로 여러 개의 소제를 만들어 증발지로 삼는다. 우선 그 혜빈 가까운 증발지에 해수를 담는다.
차례대로 이 해수를 상방의 증발지로 옮겨 나간 후, 최후의 증발지에 이르러 그 농도가 20도 이상 달하면 이것을 전오한다. 그 농도는 선충을 물 속에 넣어 검정한다.
하나의 염전은 보통 82.5㎡ 안팎인데 염전마다 여섯 개의 증발지(蒸發池)를 마련하였으므로 하나의 증발지는 약 14㎡ 안팎의 규모이다.
염전으로 이용하는 평평한 암석에는 틈이 나 있기 마련인데, 그 틈을 따라 찰흙으로 둑을 쌓는다. 둑의 폭과 높이는 약 15㎝ 정도이다. 이때의 둑을 ‘두렁’이라고 하고, 둑을 만드는 일을 ‘두렁막음’이라고 하며 증발지를 ‘물아찌는돌’ 또는 ‘호겡이’라고 한다.
증발지에서 직접 소금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이 곧 천일염이며, 천일염을 만드는 증발지를 ‘소금돌’이라고 한다. 하나의 염전이 거느리는 여섯 개의 증발지 중 함수를 만드는 증발지가 넷이면 천일염을 만드는 증발지는 둘이었다.
증발지에서 함수를 만드는 일을 ‘춘다’라고 하는데, ‘추다’라는 말은 증발지에 바닷물을 담아 놓아 햇볕과 바람으로 바닷물의 수분을 증발시키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의 허벅에는 10승, 즉 20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으며, 염분의 농도에 따라 증발지를 바꿔 나갔다. 증발지에서 해수를 증발시키며 함수를 만들어 가는 동안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 소금돌, 곧 최종 증발지에서 천일염을 만들지 못한 함수는 일정한 곳에 담아 둔다.
이렇게 따로 함수를 담아 두는 곳을 ‘혹’이라고 하였는데, 혹은 찰흙과 돌멩이로 만든 붙박이 항아리를 가리켰다. 혹 위에 빗물이 들어가지 못하게 덮는 이엉은 ‘람지’라고 하였다.
혹에 담아 두었던 함수를 다시 증발지에서 증발시키며 천일염을 만들기도 하고, 밥솥에서 삶아 자염(煮鹽)을 만들기도 하는데, 밥솥에서 삶아 소금을 만드는 일은 겨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증발지에서 증발로만 만든 소금을 ‘돌소금’이라 하고 함수를 밥솥에서 달여 만든 소금을 ‘은소금’이라고 하였는데, 돌소금은 은소금보다 모양이 넓적하고 굵었으며 맛도 뛰어나 은소금보다 인기가 많았다.
3. 하귀염전
하귀염전에서의 제염 경험자는 찾을 수 없었으나 하귀염전의 소금 평당 생산액이 구엄염전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구엄염전과 같은 암석염전에서 천일염은 물론 자염을 만들기 위한 함수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간석염전의 제염기술]
『한국수산지』에 나타난 제주도의 19곳의 간석염전과 1곳의 암석·간석절충식 염전의 평당 생산액은 최고 7근, 최저 4.6근, 평균 5.7근으로 그 편차는 암석염전처럼 크지 않았다. 이는 간석염전의 제염기술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형상[1653~1733]은 『남환박물(南宦博物)』에서 제주도의 자염법은 무오달 동안 학습시켰다고 하였다. 그러니 제주도 간석염전의 제염기술은 한반도로부터 도입되었고 그 기술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과리지편찬위원회에서는 『일과리지』편찬을 위하여 1993년 여름 이 마을 ‘장수원소금빗’에서 이루어진 제염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필자는 그 사진을 입수하고 이 마을 문00(남, 1926년생)를 만나 제염기술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봄·여름·가을 동안 비가 오지 않는 날, 조금을 중심으로 한 일주일 동안에만 염전에서 작업을 하는데, 염전에는 모래를 보충해 주며 이때의 모래를 ‘무기’라고 한다.
염전에는 바닷물을 여러 차례 뿌리는데, 이때의 바닷물을 ‘적지물’이라고 하며, 사리 밀물 때 밀려든 바닷물을 물통에 가두어 두었다가 적지물로 쓰기도 하지만 그것이 모자라면 허벅으로 해수를 담아 지어 나르며 무기에 해수를 보충해 주기도 한다.
무기에 적지물을 뿌려 적시고 써레로 염전의 바닥을 긁어 주며 모래를 말리는데, 햇볕의 양에 따라 물을 뿌리는 것은 하루에 네 번, 써레로 염전 바닥을 긁는 것은 하루에 두 번 정도 이루어진다.
적지물은 매회 평당 한 허벅의 양, 즉 20리터를 뿌린다. 열 차례쯤 적지물을 무기에 뿌리고 말리고 나서 비가 올 듯 싶으면 긁어모아 람지(이엉)를 덮어 준다. 날이 개면 다시 염전에 무기를 뿌리며 펼쳐 놓고 적지물을 주며 말리기를 반복한다.
한두 차례 적지물을 주고 말리다가 이루어지는 동안 비가 오면 그대로 내버린다. 무기에 바닷물을 뿌려 적시고 햇볕이나 바람에 말리기를 15회 정도 반복하는데, 이러한 작업을 끝낸 무기를 ‘소금모살’이라고 한다.
소금기가 잔뜩 벤 소금모살은 눈으로도 식별이 가능할 만큼 하얗게 보인다. 이런 형태를 두고 ‘삿다’라고 하는데 곧 ‘염기가 섰다’라는 말이다. 염기가 선 소금모살은 나무 삽으로 긁어모으는데, 쇠로 만든 삽으로 긁어모으면 염전 바닥의 흙모래까지 패이면서 뒤섞이기 때문이다.
소금모살에서 함수를 빼는 시설물을 ‘덕’이라고 한다. 덕은 가로, 세로 높이를 약 1m 안팎으로 돌맹이로 쌓아 만든 후, 깊이 50㎝ 정도의 홈을 낸다. 홈 바닥에는 나무를 깔고 다시 위에 띠를 깐 다음 그 주위에 흙을 바른다.
덕의 홈에 운반 도구인 산태 두 개 분량의 소금모살을 담고 그 위에 두 허벅 분량의 해수를 뿌려 주면 한 허벅의 함수가 요지에 흘러내린다. 계란이나 게로 함수의 농도를 확인하는데, 적당한 농도의 함수에서는 계란이 둥둥 뜨고 게는 옴짝달싹 못한다.
하나의 소금가마에는 일곱 허벅 분량, 곧 140리터의 함수를 채우고 하루 동안 불을 지피는데 함수를 달이는 동안 3~4회 쯤 저어준다. 그럴 때마다 찌꺼기가 위에 뜨는데 그 찌꺼기는 걷어내 준다.
걷어낸 함수를 ‘추근물’이라고 하는데, 추근물은 보관했다가 배추를 절일 때 이용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하루 하나의 소금가마에서 약 네 말의 소금이 만들어진다. 제주도 간석염전에서 이루어진 모래를 매개로 한 함수채염법은 한반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황]
제주 지역에서는 부족하나마 염전과 제염기술로 소금을 생산한 때도 있었으나 현재 염전을 경작하는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없다.